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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7회 - 박삼헌(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

  • 날짜
    2023-10-26 10: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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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일본 개항이 일본왕을 절대·상징적 존재로 만들어”

인천투데이=박규호 기자│“미국이 일본을 개항시킨 결과로 나타난 행운이 일본왕(일왕)을 절대적이고 상징적으로 만들었다.”

박삼헌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는 8일 오전 새얼문화재단이 인천쉐라톤그랜드 호텔에서 개최한 제437회 새얼아침대화에서 ‘근대 일본에서 일본 천황은 어떤 존재일까’를 주제로 강연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고베대학에서 ‘근대일본의 일왕제와 국가체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 겸 아시아콘텐츠연구소 소장, 일본역사문화학회장 등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는 ▲근대 일본 형성기의 국가체제 ▲천황 그리고 국민과 신민 사이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공저) 등이다.

“미국, 고래산업과 아시아 기항지로 일본 개항 필요”

박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근대의 시작은 서양 국가와 맺은 불평등 조약으로 시작한다”며 “일본은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이 일본에 개항을 요구하며 근대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미국은 야간 노동을 위한 조명이 필요했다. 가성비가 좋은 고래기름을 얻고 싶어 했었다”며 “고래의 이동 경로는 오호츠크해에서 일본쪽으로 내려온다. 미국은 이 고래를 잡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는 기착점이 필요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일본을 선택한 이유는 태평양을 오가는 기착지로 처음 맞닿는 국가가 일본이기도 했고, 당시 조선은 청나라와 조공관계였기에 개항 관련 절차가 복잡할 것으로 판단해 조공관계가 없는 일본을 개항하는 것으로 선택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미국은 당시 상대국에 전쟁을 선포하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며 “미 페리 제독은 당시 의회의 승인이 없었기에 일본 막부와 협상하는 전략을 취했다”고 말했다.

이어 “페리가 당시 무력 개항이 아닌 협상 전략을 택한 게 일본에 결과적으로는 행운이었다”며 “이후 일본은 1954년 일미화친조약을 맺으면서 하코다테 등을 개항했다”고 덧붙였다.
“미국 개항 요구가 일왕 권력과 권위 일체화시켜”

박 교수는 미국의 개항 요구로 권위만 있던 일왕이 권력을 얻게 되면서 일본 일왕의 권위와 권력이 일체화됐다고 밝혔다.

일본은 조일전쟁(임진, 정유 왜란)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력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일왕은 영향력이 점점 줄어 권력은 없고, 권위만 남은 상태였다. 권력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을 중심으로 한 막부가 쥐고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늘날 도쿄에 해당하는 지역에 에도 막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사츠마 쵸슈 가문의 영향력을 약화시켰고, 교토의 일왕 거처(고쿄)엔 일왕을 견제하기 위한 니조성을 세워 일왕의 영향력 역시 약화시켰다.

박 교수는 “일왕은 에도 막부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부터 권력은 없고 권위는 있는 상태였다”며 “개항으로 인해 막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츠마, 쵸슈 가문이 일왕을 옹립하면서 일왕에게 권력이 생기는 구조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왕은 이를 기반으로 ‘서양 오랑캐를 몰아내고 개항 조약을 파기하라’(파약양이)는 명령을 내렸다”며 “이 때 막부는 10년 간 준비해서 서양 오랑캐를 몰아내겠다는 약조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863년 막부가 이 약조를 지키지 않으면서 막부파와 일왕파(반막부파)가 1년 반 동안 내전을 치렀다”며 “전쟁 결과, 막부의 패배로 왕정으로 복귀했고, 일왕파가 메이지유신을 단행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이 때 막부파가 완전히 몰락했기에 일본은 근대 국가 체제를 비교적 빠르게 완성하게 된다”며 “일왕이 권력과 권위를 모두 얻었기에 1945년 패망 전까지 일을 중심으로 한 일본제국주의가 힘을 쓸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근대 이후 일본에서 일왕은 절대적·상징적 존재”

박 교수는 근대 이후 일본에서 일왕은 절대적이고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고, 이 것이 1945년 일제 패망 전 일본의 카미카제(극단적 선택 특공대)로 대표되듯이 일본 국민이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1894년에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승리의 성과는 일왕의 공로가 된다”며 “이를 계기로 일왕은 일본의 절대적이고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는다”고 말했다.

이어 “근대 시대 일왕은 막부와 각번의 권력기관 간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권위있는 존재였다”며 “또한 사회문화적 갈등을 조정하는 사실상 헌법기관의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일본은 입헌내각제를 채택해 현재 일왕에게 정권력이 없어졌지만 자연재해 때면 국민을 위로하는 역할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출처 : 인천투데이(http://www.incheon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