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미생(未生)의 나라

  • 날짜
    2015-02-16 1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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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윤태호의 작품 『미생(未生)』이 TV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시민들에게 큰 관심과 인기를 끌었다. 미생은 바둑 전문 용어로 죽지는 않았지만 살았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작품에서는 청년 비정규직이 미생이며 이들의 애환이 현실을 반영해서 시민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4년 8월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비정규직 숫자는 6백여만 명(6,077,000명, 전체 임금근로자의 32.4%)이라고 하는데 현실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규직에 근무하는 사람보다 임금 격차가 심하고 근로 환경이 열악해서 비정규직에 근무하는 부모는 학교에 다니는 자녀의 정서에 영향을 줄까봐 아빠의 직장을 속이는 일마저 일반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참혹한 자화상이다. 같은 일을 하는 데도 임금 격차가 심하고, 고용이 불안정해서 오는 불안과 불만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정치지도자들은 깨우쳐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2006~2014년 공동으로 8년간 전국 7천여 가구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지난 1월 공개했다. 지난해 빈곤층 가구(연소득 1,842만 원 이하) 중 중산층(연 1,842만~5,529만 원 소득)으로 상승한 가구 비율은 22.3%였다. 2006년 빈곤탈출 비율이 29.9%에서 계속 줄어 지난해 최저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이것은 빈곤층 5가구 중 한 가구만이 빈곤층 탈출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살아있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보스포럼을 개최하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가 발표되었다. 이 평가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 이후 바닥을 쳤던 대한민국 국가경쟁력 순위는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7년 11위에 랭크되었던 것을 마지막으로 순위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24위로 떨어지더니 박근혜 정부 1년이 경과한 지난해 순위는 더 떨어져서 26위가 되었다.

전반적인 경제 지표가 최악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국가경쟁력 순위를 깎아먹은 최대 요인은 ‘정부 정책 결정의 투명성’이라고 한다. 정부의 정책결정 투명성 순위는 지난해 세계 144개 국 중 133위로 전년보다 4계단 올라섰지만, 캄보디아(130위), 부룬디(131위), 마다가스카르(132위)보다도 낮은 점수로, 우리나라 밑으로 11개국밖에 없다. 그런데 그 11개국이 아프리카의 기니(134위), 동남아의 미얀마(135위) 등이다. 이것은 정부정책 결정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또 관료들의 의사결정 편파성은 세계 82위이다. 우리가 정경유착국가의 대명사처럼 여기는 일본(5.1점)이 세계 7위의 높은 투명성을 보이고, 우리보다 후진적이라고 생각했던 중국이 22위(4.1점)이다. 관료가 편파적이라면 사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지만, 사법부 독립성 역시 중국이 60위(4.0점)인 것에 비하면 훨씬 뒤처지는 82위(3.5점)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의 사법부 독립성은 세계 80위를 차지한 아프리카 세네갈만도 못한 처지에 있다.

근래 임금근로자의 연말정산을 비롯해서 복지정책이 아침저녁으로 바뀌는데 지금껏 우리나라의 행정체계와 관료들을 믿고 ‘묻지마 세금’을 내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세금 체계를 시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쉽고 정확하게 밝히고 징수할 수는 없을까? 세금 징수가 복잡하고 어두워서 알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은 명분과 공정성이 부족하고 균형이 부실할 때 발생한다는 것은 역대 조세정책의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현대를 정보사회라고 하는데, 정보사회란 정책의 결정과 판단에 있어 투명성을 전제로 한다. 이처럼 투명한 사회에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 정치지도자들은 더욱 겸손하고 정직해야 한다. 독재와 산업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선진국의 화려한 이론이나 경험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이제는 우리 주변의 삶과 현장에서 절박하게 우러나오는 진실을 찾고 연구하는 실천으로 시작해야 한다. 노동문제, 복지문제, 청년실업, 육아보육 등등 병들고 아파하는 현장으로 뛰어들어 그들과 대화하고, 소통하여 푸는 지도자를 시민들은 갈망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는 세금과 복지문제로 혼란하다. 시민이 불평이 적고 잘 살면 이것이 정치요, 복지가 되는데 2천 4백여 년 전에 이미 맹자(孟子)는 소박하지만 구체적 위민(爲民)정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맹자』 「양혜왕상(梁惠王上)」편에 “반백(頒白)의 노인이 무거운 짐을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길거리를 다니는 일이 없어야 하고 50세 넘은 사람은 따스한 옷을 입어야 하며 70세 노인은 고기를 먹어야 한다. 백성은 굶지 않고 춥지 않으면 이것이 왕이 되는 길이다.”라고 말한다. 양혜왕이 왕도(王道)의 길을 묻자 맹자는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

맹자가 “사람을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에 차이가 있습니까?”라고 왕에게 묻자 왕은 “차이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정치로 사람을 죽이는 것에 차이가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왕은 “차이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맹자가 답하길 “그렇다면 말씀드리지요. 당신의 부엌에는 기름진 고기가 있고, 당신의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이 나라 백성들의 얼굴에는 굶주린 기색이 완연하며 들판에는 아사자의 시체가 있으니 이는 짐승을 몰아 사람을 먹게 하는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짐승이 서로 잡아먹는 것만 보아도 사람들은 끔찍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백성의 부모가 되어 정치를 한다면서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어디 백성의 부모라고 하겠습니까?

공자께서도 순장의 폐해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맨 처음에 사람과 같은 형상의 부장품 용(俑)을 만든 사람에게 반드시 후손이 없으리라고 저주한 것은 그만큼 사람을 아낀다는 것인데 하물며 다수의 백성을 굶주려 죽이고 나서 어찌 하시겠습니까.”

위와 같이 임금 앞에서 맹자가 치열하게 자신의 주장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이 가장 가볍다(民而貴, 社稷次之, 君爲輕).”는 위민애인(爲民愛人)사상이 철저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위정자들도 다시 한 번 생각할 일이다.


* 이 칼럼은 인천일보 2015년 2월 11일(수요일)자 신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