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시민들이여! 사람을 찾아라.

  • 날짜
    2015-03-12 11:10:14
  • 조회수
    932

 

하급의 신하는 재물로 임금을 섬기려 하고(下臣事君以貨)

중급의 신하는 몸으로 임금을 섬기려 하고(中臣事君以身)

상급의 신하는 유능한 사람들을 천거하여 임금을 섬기려 한다.(上臣事君以人)

순자(荀子, B.C. 313~B.C. 238) 대략(大略)에 보이는 내용이다. 이 시대에 사는 사람으로서 심금을 울리는 글이다. 공자, 맹자에 이어 새롭게 유학(儒學)을 과학적으로 승화시킨 순자의 산고수장(山高水長) 같은 뜻이 흐른다. 우리 사회에는 다급한 현안이 많은데도 이를 해결하겠다고 기치를 들고 방략을 내놓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5천만이나 되는 사람들 중에 인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추천하는 혜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혜안은 마음을 여느냐 닫느냐에 달려있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역시 사람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포브스(fobes)>가 지난해 연말에 발표한 세계 각국의 10대, 50대 부자 명단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고 앞이 허전하다. 미국, 일본, 대만은 자수성가 창업자의 비율이 높은 반면 한국은 상속자 재벌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 10대 부자들 중에 자수성가 창업자의 명단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데 50대 부자 명단에도 역시 창업자는 12명, 부의 상속으로 부자가 된 사람의 수는 38명으로 창업자의 비율은 24%에 불과하다.

우리와 늘 비교되는 미국, 일본, 대만은 자수성가 창업자가 각각 70%, 80%, 62%나 된다. 이를 보면 한국 사회는 상대적으로 침체되어 힘을 잃은 사회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만 역동적인 사회가 아닌가. 학교와 가정에서 선생님과 부모님이 “얘들아! 성공한 저 분들도 예전에는 우리처럼 가난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 출발했단다. ……”라는 격려와 본보기가 있어야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젊은이들에게는 상승의 사다리를 오를 용기를 줄 수 있다. 그런 것을 보여줄 수 없다면 이것은 부의 세습사회의 시작이며 절망과 위험을 동반한 절벽사회가 되는 것이다.

또 하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한국의 자살률이 제일 높다고 해를 거듭하며 발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개선의 조짐이 없다.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회, 한 달이면 1,200여 명이 삶을 포기하고 있는데, 과연 이 사회를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의 출산율은 OECD 가운데 최하위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정책이 목소리만 크지 뚜렷한 방책이 없다. 근일 정부 발표에 의하면 지난해 근로자 실질 소득은 전년도 대비 마이너스 1%라고 하니 현상유지도 안 되는 어려운 삶을 입증하는 것이다.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은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대기업 정규직이 100원 받을 때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41원을 받는다.” 또 <중앙일보> 2015년 2월 13일자 기사에 따르면 “부모가 비정규직이면 자녀 가운데 78%도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이것은 부모의 고용형태가 자녀에게도 세습된다는 서글픈 현실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을 일러 이른바 미생(未生)이라고 부른다. 비정규직이 전체 국민 가운데 6백만여 명이 넘는 사회,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사회가 일상화되어 “세상이 다 그런 거지”라고 체념한다면 우리 시민사회는 깊이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발휘하여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슬기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그 많은 사람과 일자리를 찾아 길 위에 서 있는 젊은이의 마음속으로 나를 대입(代入)시킨다면 또 후일 우리 자손 중에 그 누구도 이런 환경에 직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타개하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서 나는 맹자(孟子, B.C. 372~B.C.289)의 항산(恒産)을 생각한다. 항산이란 안정된 생업, 일정한 생업의 기반인데 그것은 우선 보장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항심(恒心)이라는 한결 같은 마음, 착한 마음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맹자보다도 400여 년 전에 살았던 관중(管仲, ? ~ B.C.645)의 실용적인 정치사상을 이어받은 것이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게 되고 먹는 것이 족해야 영욕을 알게 된다. 가난한 백성은 국가가 통치할 수 없다.”

이것은 노예제 사회에서 귀족이 아닌 소인(小人)이라는 백성의 가치를 일찍이 알고 그 기반 위에서 자기의 뜻을 실천한 사람이다. 이때에는 재주 있는 사람, 현명한 사람을 썩힌다는 폐재(癈才) 폐현(癈賢)을 응징하는 제도가 있어 인물이 있음에도 천거하지 않으면 중벌을 받았다는 꿈 같은 이야기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맹자도 「공손추(公孫下)」에서 “장차 큰 일을 하려는 임금은 반드시 함부로 불러올 수 없는 신하가 있어 그와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임금이 스스로 찾아갔다.”고 말한다. 이처럼 넓게 열린 마음이라면 어찌 천하에 인재가 없겠는가!

나라에 산적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길은 결코 돈과 권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사람뿐이다. 시민들이여! 사람을 찾아라.

 

* 이 글은 인천일보 2015년 3월 11일자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