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전도흑백(顚倒黑白)

  • 날짜
    2014-01-08 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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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흑백(顚倒黑白)

2천 3백여 년 전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에는 진(秦)나라와 화평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해가며 적당한 기회를 보아 진나라에 투항하려는 친진파(親秦派)와 제(齊)나라와 동맹을 맺어 막강한 진나라에 대항하려는 자주파가 있었다. 자주파와 함께 뜻을 펼치던 굴원(屈原, B.C.344 ~ B.C.278)은 못난 임금[회왕(懷王)]과 함께 간신배들에 의해서 조정에서 쫓겨나 조국 땅을 배회하면서 나라를 애타게 걱정하는 시를 지었다. 이중 <구장(九章)> 「회사(懷沙)」편에 “變白以爲黑兮, 倒上以爲下. 鳳凰在笯兮, 鷄鶩翔舞(흰색을 바꾸어 검다고 하고 위를 거꾸로 아래라 한다. 봉황(鳳凰)은 새장 속에 있는데 닭과 집오리는 나다니며 춤을 추네)”란 구절에서 나온 말이 ‘顚倒黑白(전도흑백)’이라는 처절한 구절이다.
흑이 판을 치고, 백이 힘을 잃어 서로 혼돈의 극을 달리는 현실을 비관하는 이 시를 지은 뒤 굴원은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한다. 굴원이 서거한 뒤 초나라도 망하고 왕도 진나라에 잡혀가 죽는다. 중국은 나라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때면 으레 굴원을 회상하며 그의 우국열정이 사람들을 분기시켰다. 중국 시가(詩歌)의 풍모는 북방이 간결하고 힘이 있다면 남방의 시풍(詩風)은 보다 자유롭고 환상적이며 표현이 다채로운 것이 특징이다. 굴원의 시 역시 비분강개의 우국충정을 담고 있지만 이 같은 면모로 인해 중국인들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史記)』 「초세가(楚世家)」에는 굴원이란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호적(胡適) 같은 대석학은 그를 영국의 셰익스피어처럼 가공의 인물로 보기도 하지만 이것은 이 자리에서 판가름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이 근래 굴원이 살았던 시대처럼 흑이 판을 치고, 백이 힘을 잃어 이론도 없고, 방향도 잃은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서로의 정강정책은 대동소이하면서도 입고 있는 옷 색깔만 다른 보수양당과 그 세력에 영합한 사람들은 서로 내 말과 주장만 옳고 상대방의 주장과 말은 전부 틀렸다 하니 이것은 책임 있는 정치 세력 사이에 형무소 담장보다 높은 진영논리(陣營論理)에 함몰되어 정치가 두 쪽으로 갈라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창조적인 화해의 논리가 나올 수는 없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사회도 함께 분열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한 대학생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내다 붙였는데 이 한 장의 대자보가 전국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 대자보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현상이 널리 퍼질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가 문제다.
공자(孔子)의 수제자 자공(子貢)이 물었다.
“고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한다면 어떻습니까?”
“꼭 옳은 것은 아니다.”
“고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미워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꼭 옳은 것은 아니다. 고을 사람들 중에 선한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선하지 못한 자들이 그를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 『논어(論語)』, 「자로(子路)」 24절
공자가 이렇게 말한 까닭은 남들의 판단이나 시류에 따라 부화뇌동하지 말고, 무엇이든 상황을 살피고 연구해서 지혜를 깊고, 넓게 하는 조화로운 사람이 되라는 충고일 게다. 공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며 많은 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위령공(衞靈公)」, 27절).” 뭇사람이 모두 미워하는 것은 그 사람이 너무 우뚝하여 남과 어울리지 못해 그럴 수도 있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속은 검디검으면서도 교언영색(巧言令色)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은 결과일 수도 있다. 이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공자는 “오직 어진 사람만이 능히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능히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이인(里仁)」, 3절)”고 했다.
공자와 같은 위대한 성인조차 당대의 현실과 상황을 살필 때 정확하게 알고 판단하기 위해 이처럼 조심하고 주의했다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특정한 입장에 서 있는 몇몇 신문과 방송만으로 어떤 상황이나 현실을 보고 손쉽게 판단해 버린 그 입장에만 충실해서 다른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의 교양과 인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각각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중앙일보>와 <한겨레>가 자기주장과 배치될지라도 상대의 사설과 칼럼을 교환하여 동시에 게재하는 것은 사회의 소통과 통합을 위한 서막으로 보여 아름답다.
공자는 “苟志於仁矣, 無惡也”라고 했는데, 이 말은 “진실로 인(仁)에 뜻을 두었다면 특별히 누군가를 미워함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의 소통과 화해를 바란다면 이 말의 뜻을 수없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바란다면 말이다.

 

* 이 글은 2014년 1월 8일자 인천일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