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지금은 평화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때

  • 날짜
    2013-11-04 16: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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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를 중심으로 반가운 손님들이 인천을 찾았다. 인천광역시와 동북아역사재단, 그리고 인천발전연구원이 주최한 <황해에서의 초국경협력과 동아시아 평화> 포럼에는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바이캉(白鋼)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후쿠하라 타다히코(福原紀彦) 일본 주오대학 총장 그리고 김민배 인천발전연구원 원장 등 한·중·일 3국의 내로라하는 석학들이 모여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방안들에 대한 진지하고 열띤 토론을 나누었다. 이 귀한 자리에 초대받아 축하의 말을 전하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염려와 기대를 전했다.

최근 한·중·일 3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를 보고 있노라면 100여 년 전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앞둔 아시아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중국이 G2라는 세계적인 강대국이 되었고, 한반도가 분단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중국이 항공모함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일본 정부와 아베 신조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의 기치를 내걸고 나서는 이때 인천시와 동북아역사재단, 인천발전연구원이 중심이 되어 ‘황해에서의 초국경협력과 동아시아평화’를 심도 있게 연구·발표하는 모임을 개최하게 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한·중·일의 석학과 전문가들이 바쁜 일정 가운데 참석해 좋은 말씀을 나누게 된 것을 이 지역 시민의 한 사람으로 매우 반기며 큰 기대를 하고 있다.

한·중·일 삼국은 매우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한국은 임진7년 전쟁과 국권을 빼앗겨 식민지로 전락했던 경험이 있고, 중국은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시달렸으며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가 원폭공격을 받고 패전국이 되었다. 이처럼 지금까지 이어지는 아픈 기억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식은 오늘 심포지엄의 주제이기도 한 ‘황해에서의 초국경협력과 동아시아 평화’라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3국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 동서양의 지혜에서 찾아볼 일이다.

전쟁과 고통을 기억하는 두 가지 방식
노예제도를 지지한 미국 남부의 7개주가 독립을 선언하자 이를 인정하지 않은 미합중국 연방정부와의 사이에 벌어진 내전이 남북전쟁(1861~1865) 혹은 시민전쟁이다. 5년간 계속된 이 전쟁은 초기에는 미국 시민들, 백인들만의 혁명으로 비화되다가 전쟁이 교착되고, 장기화되면서 과열되어 멸시받던 흑인 노예들까지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정부군인 북군은 전쟁 초기에는 남군에게 밀려 고전했다. 전쟁의 전환점이 된 전투는 펜실베이니아 주 게티즈버그(Gettysburg)에서 벌어진 게티즈버그 전투였다. 남북 양측이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한 혈전으로 치러진 이 전투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전사자들은 그들이 죽은 땅에 묻혔다.

1863년 11월 19일, 남북전몰자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266개의 단어로 된 2분간의 짧은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이 바로 역사적인 게티즈버그 연설이다. 연설 내용을 간단히 축약해본다.

“우리는 오늘 정부군과 남부군이 내전으로 인해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구하려다가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마지막 안식처로서 그 전쟁터의 일부를 바치고자 이 자리에 왔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이 일은 너무나 적절하고 타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더 크고, 엄밀한 의미에서 살펴보면 우리는 이 땅을 봉헌할 수도 없고, 우리가 신성하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싸운 용감한 사람들, 전사자, 생존자들이 이 땅을 이미 신성한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중략>…… 우리는 명예롭게 죽어 간 분들이 마지막 신명을 다해 이루고자 했던 대의에 더욱 더 헌신할 수 있는 커다란 힘을 그분들로부터 얻고, 그분들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함으로써, 우리 앞에 미완으로 남아 있는 위대한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처럼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 신(神)의 가호 속에서 이 나라는 새롭게 보장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첫째 승리의 전환점이 된 곳에서 개선에 도취되지 않고 겸손했으며, 둘째 정부군과 남부군 병사의 영혼을 함께 조의했으며, 셋째 그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완성하지 못한 민주국가를 이룩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이 묘지에서 그 뜻을 다짐해야 한다는 거룩한 정신이다. 이것은 전쟁을 저주하고,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승리한 전쟁이라도 상례로서 처신해야 한다
2천 6백여 년 전 노자가 저술했다는 유일한 책인 『도덕경』은 5천여 자 81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30장과 31장에는 노자의 전쟁관이 담겨있어 인상적이다.

“전쟁은 사람을 많이 죽이는 것이기에 슬피 울어 애도해야 한다. 설혹 전쟁에서 승리했다해도 상례로서 처신해야 한다(殺人之衆, 以哀悲泣之, 戰勝以喪禮處之).”

링컨이 게티즈버그에서 말한 연설과 너무나 닮아있다. 이 근래 일본은 재앙의 단초라고 할 수 있는 병기를 만들고, ‘집단적 자위권’을 발휘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겠다며 그 위세가 대단하다. 지난 대선 때 공화당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7월 21일 일본을 방문하면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한다고 했으니 아마도 쾌재를 불렀으리라. 1900년 전후로 일본이 50년간 한국,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에 끼친 끔찍한 침략의 결과는 상상을 불허한다. 그런데도 일본은 정신으로, 마음으로 사과하는 나라가 아니다. 지금 재무장을 한다면 인접 국가들은 일본을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경계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일의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 그리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종전 68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과거 나치수용소 곳곳을 찾아가고, 그때마다 무한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2013년 8월 20일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 전역에 지어진 수많은 나치수용소의 원형인 다하우 수용소(뮌헨 인근에 위치한) 유적을 찾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의 방문이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를 잇는 다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동서독 통일과 경제적 번영을 통해 유럽의 강대국으로 성장했음에도 이렇게 과거사에 대해 변함없는 반성의 자세와 겸허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독일에 대해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란 말이 교과서에도 나온다고 한다.  메르켈 총리의 다하우 방문길에 동행한 89세의 장 사뮈엘도 당시 이곳에 수용되었던 레지스탕스 출신인데 그는 “기억은 우리의 의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정부 역시 과거 인도네시아에 대한 식민 지배를 사과하고, 배상을 약속하고 있다. 나는 이런 사고와 예의가 한·중·일 삼국이 평화와 협력으로 나아가는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현재의 우리는, 또 동아시아 3국의 시민들은 이런 사실들을 얼마나,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내부의 정치나 문제뿐만 아니라 아시아, 세계를 바라보고 그 지평을 넓혀야 한다.

아시아 위기의 근본 모순과 남북분단의 해소
지금 우리의 현실은 매우 염려스럽기만 하다. 미국은 해군력을 중심으로 ‘전위동맹전략(Forward Partnership Strategy)`을 깊숙이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멀리 떨어진 전략적 동맹국의 힘(군사력)을 이용해 세계 경찰국가의 역할과 자신들의 국익을 지키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아마도 미국의 열악한 재정 상황으로 인해 국방비가 삭감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난 고육지책이겠으나 이것은 궁극적으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중국 국민들은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대양함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평화체제를 해소하고 재무장의 길로 가고 있으며, 또 알다시피 북한은 연달아 핵실험을 했다. 동아시아가 이처럼 대결국면으로 치닫는 불안한 상황일수록 우리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의 지식인들, 오늘의 현실을 고민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시민들이라면 그 어느 때보다 평화와 협력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해야 할 때이다.

동아시아에서 평화체제가 구축되기 어려운 이유는 이들 열강의 중심에 위치한 한국이 분단이라는 모순된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3국은 이 같은 모순을 평화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자율적 모색과 정책이 필요하다. 우리가 국경을 초월해 이 같은 지혜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격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동아시아는 다시 한 번 과거의 고통과 슬픔을 반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이 재무장을 추진한다면 한반도 핵무장의 정당성을 인정하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일으킬 것이다.

지난 6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시진핑(習近平) 주석으로부터 매우 귀한 선물을 받아왔다. 당나라 시인 왕지환(王之渙)의 「등관작루(登鸛鵲樓)」라는 오언절구 20자인데, 중국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그리고 지난 1990년에 작고한 철학자 펑여유란(馮有蘭) 선생의 친필로 쓴 작품이었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중국이 한국에 보낸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白日依山盡 백일의산진
黃河入海流 황하입해류
欲窮千里目 욕궁천리목
更上一層樓 경상일층루

해는 산에 붙어서 넘어가고
황하는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천리 먼 풍경을 끝까지 보고 싶어
다시 누 한 층을 더 올라간다

나는 이 말을 빗대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가 ‘황해에서의 초국경협력과 동아시아평화’의 비전을 보고 싶다면, 우리 모두 누각을 한 층 더 오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길은 결코 쉽지 않겠으나 먼 미래의 번영과 평화를 성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한·중·일 3국의 지도자들, 지식인들, 시민들의 자각과 협력이 있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행사는 성황리에 잘 마무리되었고, 이제는 이 자리에서 모인 지혜를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 것인가 하는 실천이 남았다.

 

* 이 글은 인천광역시와 동북아역사재단, 그리고 인천발전연구원이 주최한 <황해에서의 초국경협력과 동아시아 평화> 포럼에서의 축사를 지난 2013년 9월 아침대화 모두연설과 연계하여 확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