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금병(錦屛) 심명구(沈明求, 1922~2008) 선생 탄생 백주기를 기리는 전시가 선광문화재단 주최로 지금 선광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전시는 인천 개항 이후 지금까지 인천항의 발전과정과 선광그룹이 그 과정에서 어떻게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역사적인 사진과 자료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청송 심씨 문중의 귀한 자료와 족보 등 쉽게 만나보기 어려운 전적(典籍)을 공들여 수집해 전시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금병 선생이 평소 종친의 큰 어른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여러 귀한 전시물들이 있었지만, 내 눈에 크게 띈 것은 심명구 선생이 평소 자주 이야기했다는 말씀을 적어둔 한 줄의 글이었다.
“우리 직업이 지게꾼인 게 얼마나 행복한가? 우린 화주(貨主) 앞에서도 근로자들 앞에서도 목에 힘을 주지 못하지 않나? 그게 좋은 것이네.”
예전에 인천항 부두에서 배에 짐을 싣고 부리는 일을 하역(荷役)이라고 일컬었는데 화물 이동수단이 없던 그 시절에는 오직 지게와 목도(여러 사람이 무거운 물건이나 돌덩이를 밧줄로 얽어 어깨에 메고 옮기는 수단, 그 일에 쓰이는 굵고 긴 막대기를 표현하는 말이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고 자동화된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사람이 크레인 역할을 하는 원시적 수단이라 생각한다면 틀린 말일까?) 뿐이었다. 일제하에서의 하역, 8·15 이후 미군정과 6·25전란 속에서, 또 5·16이후 군정시대에 원칙과 질서가 문란할 때, 부두 하역작업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
사용자는 사용자대로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원통하고 눈물겨운 고비가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하역업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게꾼이라고 자조하면서도 근면과 뚝심 그리고 겸손하면서도 인내심을 잃지 않았다. 이것은 팔도강산에서 빈손으로 와서 오직 몸뚱이 하나로 힘든 노동을 통해 일가를 이룬 노동자나 사용자도 각자 차원이 다를 뿐 동일했다고 할 수 있다.
<이별의 인천항>이라는 유행가도 있지만 낭만 이전의 어려운 시기에 하역사업은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땀과 눈물과 노력의 산물이었다. 지금도 부둣가에 서보면 당시 일꾼들의 신음소리와 지게꾼과 목도꾼들이 무거운 짐을 나르면서 절규하듯 토해낸 “영차영차” 소리가 짜디짠 바닷물에 썩지 않고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확실한 것은 백범 김구 선생의 독립의지에서 배어나온 신음소리도 이와 함께 뭉쳐있으리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하는 말씀 중에 “그게 좋은 것이네.”라는 구절이다. 하역사업이란 전 세계를 통틀어 사용자와 근로자의 합의가 때에 맞춰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역작업이 일관되게 진행할 수 없는 성격이 내재되어 있기도 하지만, 선생이 근로자를 대접하듯 따뜻한 힘이 엿보인다. 선광에서 노사간 갈등이 크게 있었다는 소리는 지금까지 없었던 것으로 안다. 나는 선생의 이 말씀을 인천과 인천항 발전의 정신 중 하나로 삼고 싶다.
또 한 가지 젊어서는 각기 제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 일흔이 넘어서 옛정이 그리워 달마다 세 번째 목요일에 모여 식사와 함께 즐거운 화제로 시간을 보내면서도 우리가 비록 은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지역을 위해 조금이나마 뜻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있다. 이 분들은 작은 정성을 모아 1년에 한 번씩 가을이 되면 200만 원씩 아무도 모르게 우리 새얼문화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분들은 지금까지 3600백만 원이라는 거금을 보태주었다. 또 우리 인천의 자랑 최영섭 선생에게도 붉은 장미 한 송이로 상징되는 뜻을 모아 선생의 경제적 어려움을 돕고자 협력하기도 했다.
인천이 훌륭한 도시인 까닭은 이처럼 평범한 가운데에도 좋은 사람들이 긴 세월동안 남들에게 티내지 않고 차분하게 선행이 이어져 왔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산속 옹달샘 물이 바다에 이르는 힘과 무엇이 다를까? 문화는 거친 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크던 작던 구성원들의 이해를 바탕으로 함께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또한 인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된 인천사랑 정신이 아닐까 한다.
매몰된 광부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아 체온을 유지하면서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TV인터뷰를 보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봉화 아연광산 50m지하에서 토사에 매몰된 광부들이 221시간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밖에서 발파하는 소리를 듣고 바깥세상이 자신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구조의 희망 덕분이었다. 위와 아래가, 내부와 외부가 이렇게 통하면 못할 것이 없는 한국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 답답한 시간만 계속되는지 한탄만 나온다. 욕심이 있는 것이 사람이지만 때로는 마음을 비울 때도 있어야 한다.
진공묘유(眞空妙有)란 말이 있다. 즉, 마음을 텅 비울 때 오묘한 존재가 드러난다는 뜻이다. 마음을 비우면 방법이 찾아진다. 이제 지도자들이 한번쯤 깊이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경제와 정치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암흑 속으로 향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바깥이 시끄럽고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한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여유를 가지고 내 주위에 좋은 사람을 만나 서로 웃고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견여탄(肩輿歎)>이란 시에서 “사람들은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가마 메는 괴로움은 모르고 있네(人知坐輿樂, 不識肩輿苦).”라고 말씀했다.
가마를 타는 사람과 밑에서 가마를 메는 사람이 즐거움과 괴로움을 공유한다면, 이 속에서 긍지와 화해와 사랑이 충만해지고 이것이 인천의 전통이 될 것이다. 10·29참사에 희생된 어린 혼령(魂靈)들에게 가슴 저린 애도를 보내면서 같은 땅을 밟고 사는 사람으로 한없이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뿐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치 잘 하는 법이 따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을 겪어보면 법(法)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영민한 지도자들은 상식과 역사에서 방법을 찾아내고 사람을 찾는데 온힘을 다하게 된다. 나라보다, 정권보다, 백성이 근본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출처 : 인천일보(http://ww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