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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얼문화재단

해불양수란 말은 바다가 물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받아들이며 거대한 대양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인천은 해불양수의 도시입니다. 인천이 해불양수의 도시란 것은 출신지역을 따지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 현재의 인천을 만들어 냈기 때문입니다.

인천은 역사의 기나긴 미로를 조금도 굴함이 없이 헤쳐나온 도시이기도 합니다. 조선조 말에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제국주의 열강의 이권쟁탈전이 남의 나라 한복판인 인천을 무대로 시작되었으며, 1876년에는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었고, 1884년에는 국제정세에 어두웠던 개화파가 갑신정변의 실패로 국내를 탈출하여 인천에서 일본으로 망명하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이렇듯 인천은 민족의 아픔과 치욕과 영광을 그리고 그 결과들을 이 고장민들과 함께 묵묵히 지켜보았던 곳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이 땅에서 많은 선각자들이 피눈물을 뿌리며 망명했으며, 살길을 찾아 하와이로, 홋카이도의 탄광으로 강제노역을 떠나던 민중들이 통곡하던 곳이기에 그 아픔과 더불어 더 큰 자각을 밑바탕 삼아 인천은 성장해 왔고 또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인천은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여 황해문화의 요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 설움과 모멸을 딛고 일어서 개화의 물꼬를 터준 곳입니다. 많은 신문물은 인천을 거쳐 들어왔습니다.

인천은 문화발전의 선구적 위치를 지켜 왔고, 그런 문화를 발판으로 민족의 역사가 격랑에 휩쓸릴 때마다 훌륭한 인물들을 배출했던 곳입니다. 우현 고유섭 선생은 일제의 억압 속에서 그들이 자신의 기준으로 조선의 아름다움을 마음대로 폄하할 때 `우리의 미술은 민예적인 것이며,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한국미의 본질을 제시하고, 우리 고유미의 창조성과 우월성을 연구하여 학문적으로 일본인들을 눌렀습니다.

1959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죽산 조봉암 선생은 냉전과 6.25 동란의 암울한 시기, 부정부패로 정권존립의 위기감을 느낀 당시 자유당 정부가 북진통일만이 살길이요, 애국하는 길이라고 국민 감정을 몰아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조국의 평화통일`과 `수탈 없는 경제`를 주장했던 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이고, 고장이라 할지라도 역사의 도전에 굴복하여 자기를 잃으면 깊은 수렁에서 허덕이다 자멸하여 욕된 이름을 남길 것이요, 자각을 거듭하여 이런 역사의 도전 앞에 불굴의 의지로 응전하는 민족은 역사의 수레를 이끌고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방자치시대의 개막과 함께 시민 자치와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한 지역사회가 위대해질 때 , 우리 민족이 , 우리나라가 위대해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새얼문화재단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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