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새얼백일장 산문부문 장원작품

  • 날짜
    2008-04-28 1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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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19

-------------------------------------초등3/4학년부

외갓집
인천 부일초등학교 4학년
이 은 경
 

 

우리 외갓집은 맛있는 돼지갈비를 주로 하는 한식집이다. 한 2년 전만 해도 가게에는 손님들이 왁자지껄했지만 요즘은 가게 문을 닫았다. 왜냐하면 할머니도 힘드시고 두 이모 분이 일을 해서 돈을 벌기 때문이다.
큰 이모는 옷가게를 팔고 비즈공예를 하시고 작은 이모는 눈높이 수학을 하는 선생님이다. 할머니는 그래도 우리가 오면 할머니의 솜씨를 발휘하셔서 옛 가게의 자랑인 ‘돼지갈비 짜글짜글’ 메뉴를 만들어주신다. 한 입만 먹으면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음식이 아닌 거의 예술 그 자체였다. 하지만 요즘은 할머니 댁에 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정말 슬픈 일이다. 왜냐하면 외갓집을 자주 못가니 그 맛있는 돼지갈비 짜글짜글을 많이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외할머니를 무척 좋아한다. 왜냐하면 외할머니는 나를 무척이나 사랑해주시고 맛있는 것도 많이 해 주시며 나와 함께 재미있게 놀아주고, 머리도 감겨주고 정말 좋은 분이신데……. 가게를 닫고 나니 좀 심심하신 것 같다.
가게를 그만 두신 할머니의 모습은 정말 시무룩해 보였다. 가게를 할 때의 할머니는 정말 즐겁고 생동감이 넘쳐 보였는데 지금의 할머니는 정말 힘이 없고 살아가는 재미를 잃어버리신 것 같다. 그렇게 계신 할머니를 보면 나도 힘이 빠진다. 나는 언니와 함께 할머니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하지만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언니, 무슨 방법이 없을까?”
“몰라 그러니까 생각중이잖아.”
“아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안 난다. 춤을 춰 볼까? 아니면 노래를 불러볼까?”
“언니, 우리 월드컵 노래로 춤이나 춰볼까?”
“그건 좀……. 별로다.”
“언니, 그럼 뭐할까? 그냥 우리 할머니 안마 해드릴 까?”
“그거 좋은 아이디어! 그러자.”
“그래 그럼 그냥 안마해드리자.”
우리는 할머니가 올라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할머니가 올라오셨다.
“할머니, 저희가 안마해 드릴께요~!”
우리는 할머니의 뭉친 근육을 꾹꾹 눌러 풀어 드렸다. 할머니는
“하~정말 시원하구나.”
우린 정말 즐거웠다. 할머니가 웃으시는 모습을 보니 우울했던 우리의 마음도 즐거워졌다. 언제쯤 다시 할머니께서 가게를 다시 여시고 활짝 웃고 활기 넘치는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그 때는 외갓집도 다시 활력이 넘치고 우리도 더 자주 외갓집에 가고 싶을 것이다.

 

 

 

-------------------------------------초등5/6학년부

언니
인천 주안초등학교 6학년
이 옥 형

 

나에게는 언니가 있다. 우리 언니는 나보다 5살이 더 많다. 언니는 나와 다른 점이 많다. 그래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자주 싸운다. 하지만 난 언니에게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긴 했지만 미안한 마음을 품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 친구들에게 언니와 내가 싸운 내용과 이유를 말하면 다들 내가 잘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올해 2월 까지는.
2월, 평화로운 봄방학 때였지만 날씨는 몇 년 전 엄마가 날 때리는 듯 매서운 바람이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나무를 나대신 때리고 있었다. 그런 쌩쌩 불어대는 바람을 맞는 걸 싫어하는 나는 다른 날처럼 컴퓨터 앞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두 시간 쯤 되었는데도 내가 컴퓨터 하는 것을 멈추지 않자 언니가 드디어 나에게 달려들었다.
“너 왜 이렇게 오래 해?”
아직은 먹잇감을 살피는 사자 같다.
“뭐가 어때서? 두 시간밖에 안 했는데? 조금만 기다려 봐!”
나는 언니한테 이렇게 쏘아붙이고는 다시 컴퓨터에 몰입했다. 언니는 약이 올랐는지 내 옆을 떠나지 않았다.
“이옥형, 나랑 말 좀 해.”
이런, 잡혔구나. 사자는 이미 입을 풀고 있었다. 나는 다른 때처럼 금방 싸우고 끝낼 생각으로 무조건 덤볐다.
“아, 또 왜?”
그러자 언니는 나의 눈을 보며 흘겨보지 말라고 했다. 너무 짜증이 났다. 언니는 왜 엄마처럼 내 위에서 날 다스리려 할까? 왜 나를 못 살게 굴까? 하지만 난 곧 언니가 하는 말에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짜증나지? 그렇겠지.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 넌 너한테 대드는 사촌 동생들한테 어떻게 해?”
“나?”
난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동생들은 쥐 잡듯이 잡고 언니에게는 마치 친구들에게 대하듯이 굴었다. 그런 나의 행동을 언니가 모를 리 없었다.
“내가 너한테 그렇게 하던? 난 안 그래. 솔직히 난 누가 너한테 뭐라고 하면 나는 네 걱정을 해. 네가 괜찮은지 그 걱정을 해. 내 친구들은 두 살 많은 언니한테도 존댓말 쓰더라. 난 그걸 바라는 게 아니야. 존댓말? 안 써도 돼. 그냥 언니처럼만 대해 줘.”
언니에게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은 내 눈이 아니었다. 엄마가 내 등 때를 밀 때나 하는 정다운 생각을 우리 언니가 하고 있었다. 나는 언니에게 너무 못되게 굴었다. 언니가 오죽했으면 나한테 언니처럼만 대해달라고 했을까. 만약 내가 언니였다면 그 동안 내가 언니에게 했던 장난과 말을 참을 수 있었을까? 아마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눈물이 내 얼굴을 뒤덮었고 언니 역시 나처럼 울고 있었다. 우린 서로를 보며 마구 웃어댔고, 서로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씻었다.
그 일 이후로 요즘에는 언니와 싸우는 일이 거의 없다. 싸운다고 해도 내가 먼저 사과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전처럼 말로만 하는 사과가 아니라 진심이 담긴 사과를 말이다. 언니가 이 글을 본다면 언니와 나는 지금보다 더 환하게 서로에게 웃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언니, 내가 힘들 때 엄마보다 내 마음 잘 알아주고 좋은 충고 해 준 것 고마워. 하나뿐인 내 언니, 사랑해!

 

 

-------------------------------------중학교부

내 마음속의 나비
인천선화여자중학교 2학년
한 지 혜

 

문득, 아주 이따금씩 나비가 되고 싶다는 상상을 하곤 하였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숲속을 날아다니며 뽐내는 그 아름다운 모습이…. 팔랑거리는 아름답고도 슬픈 날갯짓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나비의 매력이 부러웠다.
살랑거리는 바람타고 날리는 꽃 내음에 이끌려 날아온 나비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잊을 만큼 나비에 빠져들곤 하였다. 어쩌면 나는, 훨훨 날아가고픈 마음에 나비가 되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바람이 잎사귀에 속삭이듯 여리고 팔랑이는 작은 날갯짓이, 나비에게는 살기위한 필사적 날갯짓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자유로움과 힘찬 희망의 날갯짓이 되어 삶의 희망과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나비의 날갯짓을 통해 희망을 드리고픈 분은 바로 외할아버지이시다. 늘 할아버지의 눈 속에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가득 쌓여있다. 안타깝게도 할아버지의 큰누님이 북한에 계신 것이다. 항상 할아버지께서는 먼 산을 바라보시곤 깊은 사색에 잠기신다. 생사조차 알 수없는 큰누님을 그리며, 그렇게 깊은 생각 속으로 자꾸만 빠져 들어가신다. 그러나 이내 그리움과 외로움을 얼굴에서 지우시고 밝게 웃으신다. 나는 안다. 찢어지고 멍들어 아픈 할아버지의 마음을, 그리움과 외로움에 짓이겨 쓰라린 마음을 ‘할아버지’라는 이름아래 숨기고 계신다는 것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이것을 깨닫게 된 것은 지금과는 조금 떨어진 과거였다.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할아버지의 고통 따위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가족들과 통일 전망대로 놀러가던 날이었다. 아침까지 하더라도 할아버지께서는 통일 전망대에 별로 관심이 없으신 것처럼 행동하셨다. 그러나 아침과는 달리 할아버지께서는 전망대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셨다. 할아버지께 꼭 말씀드리고 싶었다. 조금만 참으시라고…. 곧 할아버지께서는 나비처럼 누님께 꼭 날아가실 수 있으실 거라고. 그 말은 왜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던지…. 왜 나까지 코끝이 찡하게 아려왔던지. 왜 할아버지 곁에서 함께 서 드릴 수 없었던 건지.
하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다. 힘내시라고, 나비를 보고 희망을 가지시라고…. 이제는 말씀드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났다. 그때와 달리 나는 마음도 몸도 많이 자랐고, 희망을 싣고 날아다니는 마음속의 나비도 많이 키웠으니까.
봄이 성큼 다가왔다. 따스한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린다. 초록의 계절, 자연의 계절, 그리고 나비의 계절, 내 마음속엔 녹음이 드리워지고 나비가 날아다닌다. 언젠가는 우리 할아버지께 희망을 실어드릴 예쁜 나비. 빨리 할아버지께 내 마음속의 나비가 날아갔으면 좋겠다.
희망 속에서 진실한 웃음을 지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며….

 

 

-------------------------------------고등학교부

바람속에서
서울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 3학년
엄 지 희

 

먼지가 피어오른다. 지난 추억도 함께 피어올랐다. 나는 이삿짐을 차곡차곡 박스에 넣었다. 엄마가 울까.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는 아무 표정 없이 묵묵히 옷가지를 개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등은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앨범을 들어올렸다. 투두둑. 미처 끼워 넣지 못한 사진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거기에 아빠가 있었다.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나도, 그 사진 속에서, 그 지난 추억 속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아빠는 죽었다. 1년 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거나 하늘나라에 계신다는 말로는 정리가 되지 않는다. 아빠는 죽었다. 뜨거운 햇빛아래서 같이 화단을 정리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여름이었는데도 아빠의 몸은 차가웠다. 나는 그날을, 점점 차갑게 식어가는 아빠를 잊을 수가 없었다.
이삿짐차가 골목 저 끝으로 달려갔다. 우리들의 짐도 추억도 모두 싣고서. 나는 이제 남의 집이 되어버린 우리 집을 돌아보았다. 내가 태어났던 날 아빠가 심은 목련나무가 낮은 담장 너머로 가지를 흔들었다. 잘 가라고, 이제는 안녕이라고. 지키고 싶었는데. 엄마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나도, 나도 지키고 싶었다. 이 집을. 저 목련나무를.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는 나를 위해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일을 한 적이 없는 엄마는 할 때마다 잘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집을 팔았다. 그 집은 아빠가 처음으로 장만한 우리 집이었다. 아빠는 ‘죽을 때까지 우리 집이야’라고 했다. 그랬다. 그 집은 죽을 때까지 우리 집이어야 했다. 추억도 행복도 모두 모두 죽을 때 가지고 떠나야할 그런 집이어야 했다. 그런 집을, 아빠와의 추억이 묻은 집을, 엄마는 팔아버렸다. 좋은 위치에 있는 아름다운 집이어서 금방 팔렸다. 나는 엄마에게 미안했다. 나 때문에 집을 지키지 못해서. 그런 내 맘을 알았는지 엄마는 ‘세상이, 사회가 빼앗은 거지, 너 때문이 아니야.’ 라고 했다. 엄마는 집 대신 나를 지키려 집을 판돈으로 가게를 열었다. 우리가 살 길을 열었다.
새로 이사 온 집은 전에 살던 집보다 작았다. 거실 하나와 방 하나, 그러나 엄마와 나, 단 둘이 살기에는 너무 적당해서, 아빠가 있을 자리는 조금도 없어서, 쓸쓸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목련꽃의 향기가 났다. 주택 담 너머로 하얀 목련꽃이 소소하게 피어있었다. 우리 집은 어떻게 됐을까. 나의, 아빠의 목련나무는. 나는 갑자기 궁금해져 발길을 돌렸다.
멀리 전에 살던 집의 파란 대문이 보였다. 나는 대문 가까이로 가 섰다. 은색 인터폰과 붉은색 우편함. 이사 가기 전 그대로였다. 초인종을 누르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충동적이었다.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목소리가 아닌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도망쳤다. 도망치면서 그 집을 다시 돌아보았다. 낮은 담장 안, 목련나무가 보였다. 곧 터질듯 한 꽃 몽우리를 가득 매달고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거실에 깔린 전기장판 불을 키고 그 위에 누웠다. 봄인데도 엄마는 전기장판을 들여놓지 않았다. 엄마는 춥다고 했다. 이상하게 계속 춥다고. 엄마도 알고 있을까, 그 집에 다름 사람이 산다는 걸.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지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왜 혜윤아. 나는 수화기를 꽉 잡았다.
“엄마, 그 집에 다른 사람이 살아.”
“그래.” 엄마는 작게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습기 찬 이끼처럼 눅눅했고, 축축했다.  나는 왠지 울 것 같아서 일부러 밝은 척 말했다.
“있잖아, 그 집 목련나무. 이제 곧 꽃필 것 같아. 툭 건드리면 퐁 하고 터질 것 같거든. 분명 예쁘게 피겠지. 작년처럼.”
활짝 펴 바람에 하늘거리는 목련꽃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있다가, 끊자 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폴더를 닫아 휴대폰을 장판 위에 던졌다. 등이 따끈따끈했다. 그러나 왠지 추웠다.
눈을 떴다. 깜빡 졸았는지 집안이 어두웠다.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퍼렇게 멍든 밤하늘에 벌들이 소소한 빛을 뿜고 있었다. 엄마는? 나는 벌떡 일어나 집안을 둘러보았다. 엄마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지 집에 없었다. 벌써 12시인데…. 창밖에 자주색 목련꽃이 보였다. 왠지 엄마가 어디에 있을지 알 것만 같았다. 그래서 조금, 슬퍼졌다.
엄마를 찾으러 집을 나섰다. 봄 치고는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내 머리를 흩어 놓았다. 그 집, 우리의, 아빠의 추억은 모두 흔적도 없이 벽 속에 파묻혀버렸을까. 엄마도, 그래서.
낮은 담장이 보였다. 목련나무도 보였다. 어느새 핀 목련꽃이 활짝 하얗게 웃으며 가지 끝에 앉아있었다. 바람에 목련꽃향기가 났다. 쓸쓸할 정도로 달콤하고, 아빠의 냄새와 닮은, 그 향기가.
누군가 담장 앞에 서있었다. 엄마였다. 엄마는 담장너머 그 집을 자라보고 있었다. 목련꽃향기가 묻은 그 바람 속에서 엄마는, 울고 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을 틀어막은 채.
엄마 가슴에서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목련가지를 흔들었다. 내 마음도 흔들었다.

 

-------------------------------------어머니부

핸드폰
용일초등학교 3학년 전준희 어머니
신 미 정

 

“따르릉”
“여보세요”
“자기야, 자기 주민등록번호가 뭐지?”
“왜?”
“그냥”
“왜 그러는데.”
“글쎄, 일단 말해 봐.”
“ 왜 그러는지 자기가 먼저 말해봐요.”
순간 내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으니 핸드폰 그 당시 온 가족이 모두 나의 핸드폰을 바꾸라고 아우성이었다.
“싫어, 지금 핸드폰 새로 사려고 그러지? 핸드폰 새로 구입하면 알아서 해요. 아직 더 써도 되는데 왜 바꾸려고 그래”
“그럼. 진짜 안 바꿔 준다. 평생 써야 해.”
“뚜~ 뚜~”
나의 매몰찬 거절에 남편이 화가 난 듯하다. 하지만 비록 버튼이 잘 눌러지지 않는다고 해도 문자를 보낼 때 불편하기는 해도 그래도 3년이 넘도록 내 손 안에서 기쁜 소식, 슬픈 소식 함께 했던 핸드폰이기에 난 쉽사리 바꿀 수가 없었다. 왠지 바꿀 생각을 하면 마음 한 구석이 짠 해 진다. 이런 나를 남편을 비롯한 세 아이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짜폰도 많다나? 그래도 난 이 폰을 6개월은 더 쓰려고 마음먹어 본다. 사실 너무 쉽사리 고가의 핸드폰을 자주 바꾸는 요즈음 아이들을 보면서 내심 내 아이들에게 난 지금 무언의 가르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껴서 쓸 수 있는 만큼은 써야 한다고.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핸드폰 안테나가 빠져 버렸다. 아이들은 이 때다 싶어서 일까? 한층 목소리가 커져서 이젠 진짜 바꾸라고, 아빠가 사 주신다고 하는데 왜 안 바꾸느냐고, 도저히 엄마가 이해가 안 된다고 세 녀석이 목소리를 높여 외치고 있다. 남편은 옆에서 놀리기라도 하는 듯.
“아니야, 아직 십년은 더 쓸 수 있어.”
아마도 몇 번이나 새것을 살 것을 권유했지만 그 말을 듣지 않았던 날 놀리고 싶은가 보다. 그래도 남편은 내심 이런 내가 싫지는 않은 듯싶다. 그 이후로 나의 사랑스런 폰은 그 기능을 조금씩 조금씩 상실하기 시작했다. 불통에, 상대방이 문자를 보내면 네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하고, 시도 때도 없이 꺼지고, 하여튼 내 가슴 한 구석에 사랑스럽게 차지했던 작고 낡은 내 폰은 점점 나를 실망시키기 시작 했다. 한 번 은 아들이 미용실에 간 나를 찾기 위해 20통이나 전화를 했는데, 크크, 내 폰에는 한 통도 안 왔다. 그 날 저녁 아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고 땅을 울렸다.
이런 나를 보며 큰 딸아이는 자기도 친구들처럼 신형 핸드폰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마음만 있고 말만 할 뿐 끝까지 고집 부리지는 않는다. 아마도 나의 무언의 가르침이 효과가 있는 듯하다.
그 이후로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내 폰이 싫어졌다. 이제 그만 보내줘야 할 것 같다. 당시 남편이 허리 치료를 받는 터라 다음날이 내 생일이지만 큰 선물을 요구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냥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은 왠지 싫었다. 그래도 이 세상에 내가 태어난 소중한 날인데 그냥 지나치는 것은 교육상 아이들에게도 유익하지 않은 듯싶다.
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야, 나 생일 선물로 핸드폰 사줘요.”
“응. 그래. 어디서 살려고?”
남편은 내 마음을 알아서일까? 쉽게 대답을 했고 그 날 저녁 아이들과 함께 남편이 미리 봐 놓았던 예쁜 폰을 아주 저렴하게 구입 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분홍색 케이스도 끼웠다. 큰 선물은 아니지만 내겐 꼭 필요한 선물이고 아이들은 오래도록 염원했던 일이기에 모두모두 신났다. 우리 가족은 기쁜 마음으로 대리점에서 나와 자주 가는 삼겹살집을 찾아 생일 파티를 했다. 아이들은 자기가 새 폰을 선물 받은 양 좋아 했고 서로 먼저 만져보고자 난리다. 아들 녀석은 고기 먹는 것도 먹는 둥 마는 둥, 내 핸드폰을 바꾼 건데 오래 기다려서인지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오늘 사기를 정말 잘 했다 싶다. 자칫 썰렁할 뻔 했던 내 생일이 최고의 날이 되었다. 그 날 저녁 남편에게 새 핸드폰으로 부드럽게 문자를 보냈다.
‘자기야. 선물 고마워. 예쁜 폰 잘 쓸게요.’
‘고맙긴 그 정도야. 잘됐어. 생일 축하해.’
‘음 근데 나 진짜 받고 싶은 선물 따로 있는데. 예쁜 옷 다음에 사 줄 거지?’
‘그럼 사 줘야지.’
지금도 이 문자는 나의 핸드폰 수신함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예쁜 내 핸드폰을 타고 사랑하는 남편의 목소리와 사랑스런 아이들의 목소리, 지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기쁘고 즐거운 소식만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직접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닭살 돋는 멘트로 남편에게 문자도 보내 주고, 중학생이 되어 하루하루 열심히 생활하는 큰 딸아이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줘야겠다. 지금도 초등학생인 아들은 언제 핸드폰 사 줄 거냐고 묻지만 초등학교 6학년이나 되면 한 번 생각해 볼까? 말까?
이런 내 속을 알면 아들은
“으악”
소리치고 싶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