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얼백일장 장원작품

  • 날짜
    2006-05-22 18:32:00
  • 조회수
    2831

제21회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

 

시부 장원

 

<초등3.4학년부>

정수희(인천심곡초등학교 3학년)

엄마목소리

 

“엄마 그 잔소리 좀 그만해요.”
우리 엄마 잔소리는
귀가 따갑다

 

하지만, 하지만
엄마 잔소리
듣고 싶다는
친구가 있다
엄마 없는 아이들

 

엄마의 잔소리
그렇게 소중한 것인지….


<초등5.6학년부>

박승혜(인천청량초등학교 6학년)

고양이

 

내 귀가 세모나서 귀엽데
하지만 난 그 귀로
내가 버려질 거라는 소리를 들었는걸.

 

내 눈이 영롱히 빛나는
구슬처럼 크고 아름답데
하지만 난 그 눈으로
애절하게 주인을 쳐다보았지만
나의 눈빛을 외면하는 주인을
보았는걸

 

내 덜 자란 송곳니가 앙증맞데
하지만 난 그 송곳니로
버려지지 않으려고
바지 끝을 물고 늘어졌는걸.

 

내 다리가 가냘파 보인데
하지만 난 그 가냘픈 다리로
이젠 버려진 고양이로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걸.

 

그래, 난 버려 졌어
내 귀도 눈도 송곳니 그리고 다리도
모든 것을 버림 받았어
난 고양이가 아니야
난 버려진 고양이야
그래… 그래… 달라진 건 그것뿐이야

 

귀여운 귀의 고양이야,
아름다운 눈의 고양이야,
앙증맞은 송곳니의 고양이야,
가냘픈 다리의 고양이야…!
넌 지금 무슨 생각을
그리 정신없이 하고 있니?

 

<중등부>

박태준(인천안남중학교 3학년)

돌이 있는 사람

 

나는야
마음속에
돌들을 한 아름
품고서 살아가는 사람

 

하루하루
살아가며
남들이 나에게
던졌던 돌들을 품는다

품으면
품을수록
점점 더 커져서
나를 무겁게 만든다

 

남들은
“크면서 없어진다.”
하지만
난 너무 많은 돌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길바닥에
엎드려 자고 있는
아저씨를 일으켜 깨웠다
아저씨는
일어나며
인생이 너무나
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마음이
무거워서
숨마저 못 쉬게
자신을 누른다고 말했다

 

나는
“힘들다 힘들다.”
했지만,
남들은 더 큰 돌을 품고 있다고
그때서야 생각했다

 

<고등부>

김진규(안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경남 산청 조그만 암자
나뭇가지 손가락질하는
법당 지붕 끝에
풍경이 흔들리고 있다

 

청동물고기가 파닥거린다
바람 속을 헤엄친다
세지 못할 비늘들이
햇볕을 받으며 튀어오른다

 

봄볕이 자꾸
개집을 두드린다
잠 깬 검은 개가
풍경을 올려보며 짖는다
종소리를 받아먹는다
개 뱃속에
종 하나가 틀어박힌다

 

저 멀리 도망가는
바람의 꼬리가
나무들 사이로 보인다


<어머니부>

홍숙자(인천 연수구 동춘2동)

뿌리


손가락 끝에 자리 잡은
삭은 나뭇가지는
거칠고 뻣뻣하다

 

이젠 점점 작아지는 나무기둥
후엔 썩은 나무뿌리만 남을 것이다
그 속에 묻혀 있는
내 나무뿌리는
그것을 빨아들여 내가 살아가는 양분이 될 것이다

 

잘 하구와라잉. 괜찮을 거여.
허리 디스크 수술대에 누운 내 손 끝에
어머니의 삭아가는 나뭇가지가
뿌리 끝에서부터 끌어올린 양분을 전해주고 있다

 

세 시간여의 고통 끝에
열린 수술실 문 밖에
자그마한 나무기둥이
종종 걸음으로 다가온다.

 

하나님이 내리는 벌 같은 고통에
안쓰러이 물으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내 귓바퀴에서 흩어진다.

 

거동이 불편한 내 곁에서
얇아져만 가는 나뭇가지로
궂은 일 마다하시지 않는 나무가 있어
내 뿌리에 힘이 들어간다.

 

아이구, 자꾸 눈이 히끗히끗혀
간이침대에서 중얼거리는 말에
그래, 엄마도 백내장 수술해야지
반추동물처럼 되내이는 말속에
삭아져가는 나무뿌리가
자꾸만 내 심장을 찌른다

 

 

산문부  장원

 

초등3/4학년부
이영화 (인천송현초등학교 3)

풀잎

 

안녕하세요?
저는 송현초등학교에 다니는 이영화라고해요. 저는 강아지풀잎을 좋아해요.
당신은 어떤 풀잎을 좋아하세요?
제가 강아지풀을 좋아하는 이유는 얼굴에 살짝 흔들면 간지러운 것이 좋아요.
또 강아지풀은 새의 모이로도 쓰인데요. 새도 저처럼 강아지풀을 좋아 하나봐요.
저는 강아지풀 따는 것을 좋아해요. 물론 식물을 꺾으면 안 된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냐구요? 강아지풀을 따서 손으로 돌리면 동그란 알갱이가 떨어지고 털만 남는데 그것이 더 간지럽기 때문이에요. 어렸을 때는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할 때 강아지풀을 따서 돌로 으깬 다음 음식으로 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기회가 있다면 또 하고 싶답니다.

 

 또 저는 애기똥풀도 좋아해요 애기똥풀은 본적은 없지만 국어시간에 알게 되었어요. 처음부터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이 귀엽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까닭은 꽃을 꺾으면 애기똥같은 노란즙이 나오기 때문이래요. 애기똥풀의 꽃은 4~5월에 피는데 노란색의 꽃이래요. 꽃도 풀의 이름만큼 귀여워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사진으로 보면 아마도 모두들“우와! 애기똥풀의 꽃은 정말 귀엽구나!”하면서 감탄 할걸요. 저의 꿈은 디자이너에요. 그래서 풀에 대해 관찰을 하여서 애기똥풀의 꽃, 강아지풀의 모습을 옷에 예쁘게 장식할거에요. 그럼 예쁜 옷이 만들어 지겠죠? 애기똥풀아, 강아지풀아, 너희들의 그 예쁜 얼굴을 내 옷에 담을게

 

초등5/6학년부

권슬아 (인천안남초등학교 6)

말다툼

 

하늘은 푸르고 길가에는 형형색색 물감을 흩뿌린 따스한 봄이었다.
학교생활을 마치고 하교길에 친구와 시비가 붙었다.
사소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오고가는 말속에는 서로를 향한 커다란 미움이 박혀있었다.
정말 노오란 개나리가 핀 날, 우리 마음에는 서로를 향한 미움이 자라났고, 정말 빠알간 벚꽃이 핀 날 우리는 서로 얼굴을 붉히는 사이가 되었다.

결국, 한 때 나의 가장 소중했던 친구와 나는 절교를 해버렸고, 참아오던 친구의 울음보가 터져버렸다.
우리의 찬 기운 때문인지 질투심한 꽃샘추위 때문인지 그 날은 무지막지하게 추웠고 내 가슴속 미안한 마음때문인지 달그락거리는 가방속 물건들 때문인지 내 발등위에는 큰 돌덩이가 얹혔다.

그 날밤, 잠에 들려는 내 머릿속은 갑자기 어지러웠다. 친구에게 했던 나쁜 말들이 다시 되돌아와 내 가슴에 꽂혔다. 얼마 전 읽은 책이 떠올랐다.
‘비타민 동화’라는 책인데, 그 책내용중 ‘절교를 하여 친구하나를 잃을 때마다 당신 인생의 5%를 망친 것입니다.’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그래서 난 내일 망쳤던 5%를 다시 성공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발을 뻗자 신기하게도 마법처럼 잠이 솔솔왔다
다음날 또다시 바쁜 아침을 맞았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학교에 가니 그 친구는 없었다. 40분이 되자 친구가 왔다. 인사를 하려 했지만, 차갑게 날 쳐다보는 그애의 시선에 나는 주눅이 들었다.
이미 1교시가 시작되었지만 수업은 나의 귀에 가까이 와보지도 못했다.
쉬는 시간에도 접근을 시도해 보았지만, 그 때마다 돌아오는 건 차가운 침묵과 쓰라린 무시뿐이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바보같이 나는 또 화를 내벼렸고, 사이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리고 사소한 말다툼이 잦아지자 우리는 육체적으로 나 심리적으로나 지쳐버릴 뿐이었다.
얼마동안 우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정말 이제 마음속에선 그 친구를 향한 미안한 마음을 눈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내주위에 친구들, 선생님, 형제 심지어 부모님들도 친구와 화해를 하고 아름다운 우정을 쌓은 편이 좋다고 말다툼가지고 뭘 그러냐고 하지만, 주먹싸움보다 나쁜게 말다툼이라고 생각한다.
주먹으로 맞아서 멍이 들면 약 2주. 손으로 찝히면 약 4일, 손톱으로 긁히면 약1주 ........
그렇지만, 가슴이 시퍼렇게 멍들고 마음이 아프게 찝히고 자존심이 쓰윽 긁히면 언제쯤 나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말다툼의 상처는 더 오래가는 것이다
몸을 때려서 피가 나면 약바르고 밴드를 붙이면 되지만 가슴을 때려서 피가 나면 어떤 약도 먹히지 않고 어떤밴드도 붙일수 없으니 말다툼의 상처가 더 깊은 것이다.

“이렇게 욕할바엔, 그냥 한 대 치지 그랬어?” 라던 친구의 말이 기억난다.
6학년이 된 지금 친구의 그 울음 섞인 말의 의미가 큰 옷이 되어 내 가슴에 박혀온다.
‘미안해 친구야, 나 더 이상 내 인생의 5%를 잃지 않도록 잘할게.’


중학교부

박성호 (관교중학교 2)

잊혀진 이름

 

서해 최북단의 외딴 섬마을, 나는 그곳에 살았었다.
섬마을 작은집옆 울타리 속 닭 11마리, 생일선물로 받은 닭 11마리는 섬생활에서 가장 소중 하고, 귀중했다. 닭 11마리에게는 각각의 이름이 있었다.

닭무리를 이끄는 장닭‘왕님이’털이 유난히 부드러웠던 ‘부드래미’꼬리 부분이 뭉툭한 ‘뭉뚝이’, 다른 닭을 곧 잘 괴롭히던 사나운 ‘사나비’벼슬 부분에 까만점이 있던 ‘점박이’등......
닭들에 대한 추억은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맴돈다.

섬에 있던 때, 학교가 파하면 나는 쏜살같이 집에 달려왔다.
닭들은 내가 오면 기다리기라도 한것처럼 날개를 펄럭대며 좋아했다.
닭들은 보통 사람이 다가가면, 도망가기 마련인데 우리 닭들은 내가 안아도 가만히 있었다.
그 만큼 닭들은 나를 좋아했고, 나 또한 닭들을 사랑했다.
자나깨나, 닭들 생각뿐이었고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보다 닭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마음이란 것이 이런것일까?

닭무리를 이끄는 왕님이는 늠름한 몸, 훤칠한 얼굴, 아침만 되면 울리는 울음소리는 어떤 소리보다 듣기 좋았다. 옆집에도 닭장이 있었는데 그 쪽 수탉과 왕님이는 곧잘 시비가 붙었다.

어느날은 왕님이가 옆집 닭에게 쪼여 벼슬에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엉엉 울었다.
또 어린 마음에 밤이 되자 몰래 후레시를 들고 왕님이의 벼슬에 약을 발라 주었다.
이렇듯 닭들은 나에게 친구 이상의 존재였고 무엇과도 바꿀수 없었다.
어느날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셨다. “성호야, 이제 닭 잡아먹자~지금 잡지 않으면 질겨져서 먹지도 못하고 버려야 한다니까? 1년도 넘게 키워잖니. 엄마 말 듣자 응?”이말을 듣자마자 소리쳤다.“싫어! 엄마는 나 먹을 수 있어? 어떻게 가족을 먹어? 육지에 데리고 갈꺼야!”닭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가 야속했다.
그렇지, 곧 육지로 이사갈것이고, 그렇게 되면 닭을 키울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도 닭을 잡아 먹을 순 없었다.
‘미안해… . ’닭들은 내마음을 알기라고 하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며칠후 닭들은 내가 학교에 간 사이 모두 사라졌고, 그날 느꼈던 슬픔은 이루 말할수 없을 만큼 컸다.
시간이 흐르고, 섬을 떠나 육지로 이사온 나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고 어느새 가족같던 닭들과의 이별은 점점 잊혔졌다.
‘딩동댕동~’방과후 학교문을 나설때였다. “삐약삐약~”병아리였다. 한 마리에 백원이라는 문구를 달고 병아리장수가 교문에 있었다.문득, 닭들이 생각났다.


“왕님이, 부두래미,뭉뚱이,사나비,점박이,통신이,뚱땡이……. 어? 뭐였더라….”‘없으면 죽을 것 같이 그러더니, 벌써 이름 하나 한번에 기억 못하게 되었네’
시간은 그렇게 닭들의 이름마저 지워버렸다. 오늘은 집에가서 닭들의 이름을 다 기억해내야겠다
내 사랑 닭들은 내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았을테니까. 저 멀리 구름속 닭들이 나를 보며 웃고있겠지. 하늘을 보며 나도 방긋 웃었다.


고등부

윤단비(숭덕여자고등학교 2)

바다

 

  달빛을 받으며 도착한 소포에서는 바다 내음이 흘렀다. 마치 그 두터운 포장 안에 작은 바다를 품고 있기라도 하듯. 서울까지 먼 거리를 오면서 많은 육지의 것들과 스쳤을텐데도 코에 닿는 짠 기운은 선명했다.
  바다는  그 향이 저마다 다르다, 동해와 황해가 서로 다르고 경포대와 삼척 역시 또 다르다. 때문에 나는 굳이 일그러진 글씨로 적혀있는 발신자 주소를 해독하지 않아도 이 소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 어머니가 보내신 것이었다.
  단단히 봉해져 있는 마분지를 조심스럽게 들추었다. 접혀져 있던 종이가 펼쳐지며 메마른 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부스럭대기를 한참, 마침내 큼직한 종이 상자가 입을 열고 그 안에서 샛노란 귤들이 고개를 빠꼼 내민다.


  방안에 새콤한 귤냄새가 가득 찬다. 나는 문득 그리움이 깊어졌다. 나지막한 돌담들, 그 옆으로 넓게 펼쳐진 밭. 또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생선들을 낚아올리는 사내들의 땀방울. 섬이 좋아서 섬으로 갔지만 자식 걱정에 다시 육지를 바라보며 사시는 어머니. 그 모든 것들을 만나러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어 가슴이 두근거린다.
  겨우 마음을 추스른다. 환기라도 시킬 생각으로 창문을 연다. 제주도의 푸른 바다 대신 어두컴컴한 아스팔트의 바다가 보인다. 그 위로 얽히고설킨 전깃줄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은 주황빛 동그란 자국을 딱딱한 수면위에 그려 넣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가로등이 툭 꺼지면서 맥을 잃었다. 어느새 아침이 오고 있는 것이다. 왼쪽에서 동이 틀 기미가 보이는 것을 보니, 아, 그럼 이 창은 남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2년 전, 서울로 전학을 온 이후, 낯선 서울살이는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빴다. 그리고 그것은 순식간에 나의 일상으로 녹아들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생활에 적응했다. 하지만 그것도 나 자신의 깊은 곳 숨어있는 향수를 지우지는 못했다.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창마저도 고향을 바라보고 있다.


  사실 나는 내 유년기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다. 제주도는 중학교 시절과 명절이나 방학 때 어머니의 얼굴을 뵈러 몇 번 내려간 기억밖에는 없다. 그런데 그런 별 추억 없는 섬에 내가 마음을 두고 있는 건, 어머니가 느꼈던 바람, 어머니가 ?f었던 검은 현무암, 어머니가 손을 담갔던 그 바다가 전부 내게로 넘어와서 이지 않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동화된 것이다.
  이렇게 나는 이미 섬사람이고 이리도 그리워 하는데 나는 마음대로 내려갈 수가 없고, 그저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감귤 몇 개의 향을 맡으며 위안을 삼아야 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내리기 시작한 눈송이가 시큰한 콧등위에 앉았다. 체온에 빠르게 녹아들어서는 물방울이 되어 도르르, 다시 코 끝에서 뚝 떨어졌다. 나는 크게 한숨을 쉬며 허연 입김을 만들어 보이고는 창 밖 먼 곳을 응시했다. 빽빽한 건물들 사이로 극히 일부분만 보이는 지평선이 마치 파도가 밀려오듯 일렁거렸다.

 

어머니부

박경희(인천 계양구 효성2동)

뿌리

 

  일곱살 내 예쁜 딸 효정이와 할머니의 사랑은 나와 엄마보다 더 진하고 감동적입니다.  늘 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자주 ?O아뵙지도 못하다가 필요한 때면 언제나 
  “엄마, 4월10일부터 29일까지 통계청 아르바이트가  있으니 오세요?”
  “그러지 뭐 ... ...”
  딸 다섯에 아들 하나 서른아홉 혼자 되셔서 환갑이 되도록 자식 뒷바라지에 복이 많아 손주 손녀들까지 늘 엄마를 바쁘게 만든다 일이 시작되고 효정이와 할머니의 사랑 쌓기는 집안에 늘 웃음 이 가득하게 만들었다.
  “할머니, 쭈쭈 유치원 다녀올께요. 빨리 보세요.”
  “그래, 황소 바람 불면 마스크 꼭 하고 와.” 하시면서 마스크 씌워 주시고 현관문 닫히기 급하게 베란다로 나가서 양손 흔드신다.
  “차 잘 보고,”
  “예, 안녕” 요란스럽게 아침 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할머니 따라 다니면서
  “할머니, 웃어.”
  “싫어, 내가 왜 웃어.” 한 번 웃으시면 눈물까지 흘리시는 할머니 모습이 사랑스럽다면서 눈만 마주치면
  “할머니, 웃어.”
  “싫어.”
  “울라 울라 , 씰룩 씰룩 이래도 안웃어.” 요란스럽게 엉덩이를 흔들면,
  “푸하하.”
  “ 아 ! 할머니 웃는다. 만세 ! 너무 귀여워. 쭈쭈” 하면서 할머니 가슴을 좋아하는 인형인양 만지는 효정이의 표정이 익살스럽기만 하다. 함께 한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자처럼 할머니 뒤를 ?i아 다니면서
  “울라 울라. 짠 - 할머니 옛날 얘기”
  “옛날에, 토끼와 거북이가 ... ....”
  “말고, 또 그거야,”
  “심청이 얘기 해 줄까?”
  “어제 했잖아요.” 
  “그럼, 흥부와놀부?”
  “아이, 할머니, 재미없어요, 할머니, 나 야광 팬티예요, 보실래요?”
  “어디?” 잠옷 바지를 내리고
  “울라 울라, 할머니도 야광 팬티 사 줄까?”
  “할머니는 봐 줄 사람도 없다.”
  “하하하 ... ... 호호호.”
  정말 할머니와 손녀 무슨 얘길  하던 웃음 한바탕이다.
  아르바이트 일이 거의 끝나서 엄마는 예약한 병원에 검진 받으시고 네째 딸 출산 준비 해 주시고 고향집으로 가신 다고 하셨다.
   “할머니, 왜 가?”
  “할머니 집에 가야지.”
  “여기가 할머니 집이야 . 몰랐어요?”
  “아니야, 점촌이 내 집이냐, 얼마나 좋은데.”
  “뭐가 좋아, 가지마 응?”
  “또 올게, 효정아 피아노 잘 치고 책 많이 보면 또 올게.”
  “싫어.”
줄다리기 싸움하다 할머니 진료가 끝나고  네째네 집에 가는 전철에서
  “효정아, 할머니 이모 만나서 가고 우린 그냥 집에 가자.”
  “... ...”
  “왜, 말이 없어?” 눈에 맺힌 눈물을 참느라 말도 못하던 효정이
  “앙 - . 흐흐흑....”
  “왜그래? 이모 보고 싶어서?”
  “흐흐흑...”
  “할머니,  응응.”
  두 줄기 세 줄기 흐르는 눈물 어쩜 그렇게  울 수 있을까.
  “할머니, 그 표 주세요.”
  “무슨 표?”
  “병원에서 받은 표요?”
  예약 진료증을 받아 주머니에 넣고 할머니랑 헤어지면서 언제 그렇게 서럽게 울었느냐 의심이 가도록
  “할머니, 울라 울라 웃어.” 하면서 할머니를  향해 엉덩이 춤을 추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전철타고 돌아오면서 ‘할머니 이름이라도 봐야지.’하며 종이를 펼쳐보며,
  “신명자 할머니, 없으니까 심심하다.”
  “곧 또 오셔.”
  “그래도 보고싶다. 참아야지 엄마, 정석이 이모 애기 놓으면 오신 댔어요.”하면서 스스로 안도의 숨을 쉬는 걸 보며 너무나 미안했다.


  늘 소극적인 엄마가 싫어서 미운말, 가슴 아픈 말만 잘 한 내가 할머니 재미있게 해 주려고 유난히 수다스럽게 지껄이고 춤추는 딸 효정이에게 부끄러웠다.
  핏줄이 무엇인지 지루한 딸네 집 생활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으신 작은 거인 엄마는 자신이  뿌린 씨앗들이 사회에 잘 뿌리 내려서 살아갈 수 있도록 늘 격려와 칭찬을 하신다.
  엄마를 보면 울 것 같아서 난 늘 삐둔 딸이었다. 4년 전 말기암 선고를 받으셨을때도 난 독한 말만 골라서했다. 괜히 잘하면  먼저 가신 아버지 질투나서 엄마 데려갈까 두려워 나 나쁜 딸을 자청하고 산다.


  이 모든 사랑이 인간의 뿌리 덕 아닐까 끊을래야 끊을  수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뿌리의 깊음 때문에 살아 갈 수 있고 내일에 꿈을 열매 맺기 위한 사랑 뿌리로 더욱 행복한 내일을 수 놓아 봅니다.
  엄마의 나쁜 딸 오래하도록 삶의 뿌리 깊이깊이 ?ㅓ? 나가세요? 엄마 혼자 두고 나가면서 “취미 생활하세요.” 하고 나가는 나쁜 딸 오래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