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2022년) 새얼 백일장 장원작품

  • 날짜
    2022-09-01 16:48:55
  • 조회수
    2382
초등 3, 4학년부 시부 장원 
연성초등학교(인천) 4학년 김지아 


가방 

더운 여름날, 
예쁜 가방에 
사탕도 넣고, 
캐러멜도 넣고, 
초콜릿도 넣었다. 
다음 날, 
다 녹아버렸다. 
야, 가방! 
네가 내 간식 
쭈압쭈압 
빨아 먹은 거지? 
그럴 거면 
내 시험지도 좀 먹지. 


초등 3, 4학년부 산문부 장원 
용현남초등학교(인천) 3학년 백아윤 


허둥지둥 

나는 아침마다 아빠가 깨워준다. 
“아윤 씨, 일어나세요”라는 목소리를 들으면 항상 아침이 행복하다. 그런데 그날은 행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빠가 늦게 깨웠기 때문이다. 평소 부드럽게 깨워주던 아빠가 “아윤아, 늦었어. 빨리 일어나!” 하고 소리치며 나를 깨웠다. 나는 부리나케 일어났다. 옷을 허둥지둥 입었다. 나는 늦게 일어난 것이 걱정되어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날은 운이 정말 없었는지 ‘줌(zoom)’에 들어가는 방법도 기억이 안 났다. 허둥지둥 자꾸 실수했다. 아빠도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 나는 결국 울면서 오빠 방에 들어갔다. 
“오빠, 줌에 안 들어가져. 어떻게 들어가는지 기억이 안 나. 나 좀 도와줘.” 그랬더니 오빠는 “아, 좀! 노크 좀 하라고! 나가!” 하면서 화를 버럭 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알겠다고 했다. 내 방에 가서 울고 있는데 오빠가 들어와서 줌 수업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줬다. 나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줌 수업이 끝나고 영어 학원에 도착해서 가방을 열었는데 영어 책이 없었다. “하, 망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계속 허둥지둥하는 날인 것 같다. 영어 책을 가지러 다시 집에 갔다. “정말, 그거 하나를 왜 안 가져와가지고.” 나는 후회했다. 엄마 화장대에 얌전히 놓여 있는 영어 책을 보니까 더 화가 났다. 책을 확 낚아채다가 옆에 있던 엄마 화장품이 바닥에 떨어졌다. 완전히 박살이 난 엄마 화장품은 과자 부스러기처럼 가루가 되었다. “아, 어떡해…… 에라잇, 모르겠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화장품을 그대로 놓고 다시 학원으로 전력 질주했다. 마음이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얼마 뒤 영어 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 괜찮겠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엄마가 와 있었다. 엄마는 “아윤아, 엄마 방에 깨진 화장품 어떻게 된 거야?” 하고 물었다. 나는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면서 엄마한테 혼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마음이 불안해서 결국 눈물이 났다. 그런데 엄마는 화장품이 애초에 부서진 거라서 버리려고 했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살았다.” 
앞으로는 아무리 급해도 허둥지둥하지 말아야지. 허둥지둥할수록 마음이 조여서 오히려 더 큰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제는 급할 때일수록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려야겠다. 


초등 5, 6학년부 시부 장원 
용동초등학교(서울) 6학년 원성준 


턱 

기분이 나쁘다 
형이랑 닮았다는 말을 또 들었다 

형은 아빠 닮았다 
나는 엄마 닮았다 
그런데 아빠랑 엄마는 하나도 닮지 않았다 

형도 기분 나빠한다 
내가 훨씬 더 잘생겼는데 
형이 기분 나빠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형이랑 내 사진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았다 

눈도 다르고 
코도 다르고 
다 다른데 
턱이 똑같이 생겼다 

잠시 후 나는 더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형 나이가 되면 
저렇게 생긴다고? 



초등 5, 6학년부 산문부 장원 
삼산초등학교(인천) 5학년 박가람 


빈칸 

우리 누나는 올해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에 들어갔다. 누나가 없는 방이 빈칸처럼 허전하다. 나는 누나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같은 방을 썼다. 누나가 침대 2층에서 자고 나는 1층에서 잤다. 같은 방을 쓰니 누나가 나를 깨워주기도 하고, 방 전등도 켜고 꺼줘서 편했다. 
어느 날, 누나랑 같이 침대에 누워서 뭐 하고 놀지 생각하다가 티브이에서 본 ‘단어 맞추기 게임’을 하자고 했다. 
“알겠어, 그러면 누나 노트북 좀 갖다 줘.” 
“응.” 
“난 핸드폰에 단어를 적을 테니까 너는 노트북에 적어.” 
게임이 시작되었다. 
“포켓몬 중에 갈색이 있나요?” 
“어…… 아마도?” 
“정답! 이브이!” 
난 일부러 ‘아마도’라고 대답했지만 누나의 날카로운 질문에 당하고 말았다. 다음은 내가 질문할 차례였다. 
“마블 히어로 중에 슈트를 입었나요?” 
“아니요!” 
“호크아이!” 
“땡!” 
난 정답이 뭘까 궁금했다. ‘뭐지? 호크아이가 맞을 텐데.’ 결국은 포기하고 누나에게 정답을 알려달라고 했다. 
“아, 그냥 정답 알려줘.” 
“정답은 헐크!” 
‘왜 헐크가 생각이 안 났지?’ 누나와 나는 이렇게 놀았다. 고등학교 3학년인 누나는 초등학교 4학년인 내 수준에 맞춰서 놀아주었다. 내가 만약 누나라면 유치해서 안 놀아줬을 것 같은데. 누나는 배려를 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누나가 대학생이 된 후로 평일에는 더 이상 누나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누나는 주말에만 집에 온다. 평일에는 누나와 게임을 할 수 없어서 티브이를 자주 보게 되었다. 형은 매일이 시험 기간인 것처럼 공부만 해서 누나의 빈칸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내년이면 형도 대학을 간다. 그때는 나랑 엄마만 우리 집에 있을 것이다. 좀 슬플 것 같다. 나는 누나가 대학 입학이 결정되고 나서도 함께 지낼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시간은 빨리 갔다. 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누나가 주말에 집에 올 때마다 놀아달라고 한다. 그런데 누나는 나와 놀지 않고 엄마랑 얘기만 한다. 기숙사에 있는 동안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엄마와 얘기가 끝나지 않는다. 이건 말이 안 된다. 
마침내 엄마와 얘기가 끝나고 누나는 나와 구슬 게임을 같이 해줬다. 누나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랑 놀아준다. 주말만이라도 이렇게 빈칸이 채워지는 것 같다. 형도 대학생이 되면 나는 거의 모든 것을 혼자서 해야 한다. 형의 빈칸이 생기기 전에 스스로 놀고 살아가는 힘을 키워야 한다. 빈칸을 스스로 채워가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 누나랑 형처럼 엄마 아빠의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 엄마도 나의 빈칸을 느끼게 될까. 그 전에 나는 누나가 나에게 한 것처럼 엄마랑 친구처럼 시간을 보내야겠다. 엄마랑 요리도 하고, 시장도 가고. 티브이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 대신 엄마랑 더 많이 이야기도 해야겠다. 




중학교부 시부 장원 
성리중학교(인천) 1학년 육현수 

무게 


집을 뛰쳐나와 바람을 쐬어보아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보아도 
무거운 나의 마음의 무게는 
줄어들 줄 모른다 
뛰어도 보고 
물도 마시고 
책도 읽어봤지만 
마음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져만 간다 
이제는 마음이 너무 무거워 
발이 떨어지지 않아 위를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새하얀 구름들이 정답게 떠다니고 있었다 
그런 하늘에 
무심코 손을 뻗어보았지만 
부드러운 바람만이 
두 뺨을 스칠 뿐이다 
아, 저기 저 구름은 어찌 저렇게 가벼이 나는 것일까? 
도대체 마음이 얼마나 가벼워야 
저렇게 자유롭게 날 수 있을까? 
궁금해봤자 소용없다 
난 이미 답을 알고 있으니까 
이제 걸음을 돌려야 한다 
무거운 마음의 무게를 
덜 수 있는 집으로, 엄마에게로 


증학교부 산문부 장원 
삼산중학교(인천) 3학년 배유미 


숨겨둔 것 

우리 엄마는 마음을 만든다. 마음을 만든다는 건 무엇일까. 엄마는 마음을 나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내가 마음에 관해 물으면 그저 말없이 웃었다. 
엄마는 예전부터 무언가를 만들어왔다. 회사 일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새로운 걸 만들어냈다. 그리고 엄마는 그것들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 뭐 만들어?” 
“축복.” 
“축복?” 
“응, 엄마는 축복을 만들어.” 
꽃다발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엄마의 세계에서 꽃다발의 의미는 축복이구나, 라고. 엄마의 비유는 다소 낯설기도 하면서 재미있었다. 그 뒤로 나는 틈만 나면 엄마에게 묻곤 했다. 
“엄마, 오늘은 뭘 만들었어?” 
“향기를 만들었지.” 
“디퓨저 말하는 거지?” 
“응, 어떻게 알았어? 대단한데?” 
“이제 이런 것쯤은 나도 예측할 수 있다고.” 
“많이 컸네.” 
엄마는 눈꼬리를 곱게 구부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엄마는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견해했을까, 아니면 어린아이의 애정 어린 투정이라고 생각했을까? 
어느 날은 엄마가 붙이고 간 쪽지와 함께 귀여운 키링이 책상에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엄마가 만든 세잎 클로버 키링이었다. 이건 행복을 만든 거로 생각하면 되려나, 이런 생각을 하며 키링을 가방 지퍼에 달았다. 왜 굳이 네잎 클로버가 아니라 세잎 클로버였나. 뒤늦게 엄마에게 물어보니 잠깐의 행운을 좇는 사람보단 소소한 행복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그랬다고 한다. 부디 엄마의 바람에 부응할 수 있는 내가 되길.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만드는 걸 멈췄다. 전부터 좋지 않았던 허리 상태가 악화됐나 보다, 나는 그저 그렇게 짐작만 할 뿐이었다. 올봄에 엄마가 입원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는 그때 허리 디스크가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봄을 미워했다. 엄마는 봄을 제일 좋아하는데, 벚꽃도 보지 못하고 지나간 엄마의 봄이 미웠다. 사실 은연중에 엄마가 다시 입원할까 봐 무서운 탓이 컸다. 
엄마가 마음을 만들기 시작한 건 초가을이었다. 허리 디스크가 호전되었다고 판정받은 지 일주일 만이었다. 좀처럼 엄마가 무언가 만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던 나에겐 퍽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번엔 엄마가 뭘 만들까? 
“마음.” 
마음?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되묻는 것도 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결국 감조차 잡히지 않아 엄마에게 되물었다. 
“엄마, 마음이 뭔데?” 
“나중에 자연스레 알게 될 거야.” 
엄마는 어떠한 힌트도 주지 않은 채 마음을 만들었다. 평소에는 엄마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짐작이라도 했건만, 이제 그럴 수도 없다. 엄마는 내 앞에서는 절대로 마음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마음은 뭘까? 마음은 숨겨둔 것. 엄마가 내게 숨겨둔 것은 뭘까? 속상함과 호기심이 교차할 무렵, 가을도 끝을 맡아가고 있었다. 
엄마는 꾸준히 병원에 다녔다. 항상 받아 오던 약은 똑같았는데, 양이 갑자기 늘었다. 아마도 회사에서 오래 앉아 있어 그런 거겠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물었다. 
“엄마, 무슨 약이 이렇게 많아? 이거 다 허리 디스크 약이지?” 
“괜찮아,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긴. 많이 아픈 거 아냐?” 
평소였다면 워낙 아픈 걸 티내기 싫어하는 엄마였으니 넘어갔겠지만, 그날은 속상했다. 엄마는 나한테 아픈 걸 말하기가 그렇게 싫은가? 그렇지만 난 하나뿐인 엄마 딸인걸. 엄마가 나에게 조금은 의지해줬으면 좋겠는걸. 
“나는 엄마가 나한테 말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엄마 딸이잖아.” 
엄마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엄마의 눈동자가 왠지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다. 
“아픔은 숨길 게 아니라고 생각해. 부정적인 감정은 함께 나눠야 사라진대, 엄마.” 
“엄마가 생각이 짧았나 봐. 늘 행복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어.” 
옅게 미소지은 엄마의 얼굴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엄마가 진짜로 숨겨둔 것은 아픔이구나. 내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구나.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엄마의 허리 디스크 상태가 많이 나빠졌다. 엄마는 걸을 때 유독 힘들어했다. 병원에서는 엄마에게 입원 치료를 권장했다. 결국 엄마는 이 주일 동안 입원하게 되었다. 나는 매일같이 병원에 갔다. 엄마는 항상 손이 근질거려 죽겠다고 했다. 얼른 퇴원해서 인형도 만들고 밥도 먹고 싶다고 했다. 병원 밥보다 내가 해준 볶음밥이 더 맛있다고 했을 땐 괜히 어깨가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퇴원하면 볶음밥을 해주기로 약속하자 환하게 웃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선하고 예쁜 미소였다. 
이 주일간의 입원도 서서히 끝나갈 무렵, 엄마가 내게 물었다. 
“엄마가 전에 만들던 마음이 뭔지 궁금하지 않아?” 
“응? 궁금하지, 근데 그거 비밀 아니었어?” 
엄마는 말없이 내게 새하얀 목도리를 매주었다. 엄마의 피부 같은 목도리. 나를 생각하면서 만들었을 목도리. 그래서 더 고귀하고 아름다운 목도리. 더 이상 엄마의 마음은 숨겨둔 것이 아니다. 그럼 엄마의 마음은 목도리일까? 
“엄마, 이게 왜 엄마의 마음이야?” 
“그것도 자연스레 알게 될 거야.” 
역시 엄마는 이번에도 해답을 알려주지 않는구나. 엄마가 없는 빈집에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겨울에 손수 뜬 목도리를 선물한다는 건 엄청난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엄마는 아마 내가 따뜻하게 다니길 바라는 마음에 그런 거겠지. 아마 그런 마음이 엄마에게는 사랑이겠지. 그래, 엄마가 만드는 마음은 사랑인 거야. 많이 소중하고 특별한 마음이야. 엄마가 숨겨두고 싶었던 게 아니라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 
그럼 내가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뭐지? 항상 마음을 다 주던 엄마와 달리 나는 잔뜩 겁먹은 채 뒷걸음치고 있었다. 많은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학교 공개 수업 때 엄마는 오지 말라고 하는 내 모습. 뒤늦게 후회하는 내 모습. 사과하는 게 무서워 다시 뒷걸음치는 내 모습. 내가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사랑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엄마에겐 오랜 꿈이 있다. 글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업으로 삼고 싶은 건 아니랬다. 문학을 배우고 문학을 만드는 게 청춘 시절의 꿈이랬다. 그리고 여전히 갈망하고 있는. 나는 그 오랜 꿈을 선물하기로 했다. 엄마는 여전히 청춘이니까. 
용돈을 깨서 만년필을 샀다. 엄마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사는 데 애를 좀 먹었다. 다음 날에는 엄마가 종종 만들던 실 제본 노트를 만들었다. 봄에 어울리는 향긋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노트였는데 내가 만드니 어딘가 삐뚤빼뚤한 노트가 됐다. 새삼스럽게 엄마의 손재주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내년 봄이 되기 전엔 꼭 이 선물을 엄마 손에 쥐어줘야지. 
남몰래 마음속으로 엄마에게 속삭였다. 
“이건 엄마의 청춘이야.” 
곧 봄이야, 엄마가 사랑해 마지않던 봄. 

 
고등학교부 시부 장원 
샘물중고등학교(경기) 12학년 이지원 


증명 

내 이름은 비오수르스 에피아 
한국 이름은 김지금 
친구들은 나를 아프리카라 불러요 
이름을 외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피부가 나를 증명하지 못해서래요 

나는 증명해야 합니다 
곱슬거리는 열아홉의 시간을 
나를 증명하는 데 쓰고 있어요 
시선들이 구부러지는 거리에서, 편의점에서 
미분적분을 배워야 하는 교실에서 
나는 홀로 곱슬거립니다 

어제는 동네 사진관에 갔는데 
어디서 여행 왔냐며 국적을 물었죠 
저 한국인이에요, 김지금이고요 
애써 웃어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 
나는 또다시 곱슬거렸어요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 마시는데 
엄마, 이빨이 너무 희어 어떤 꼬마가 나를 가리키며 웃네요 
사람도 겉과 속이 다른데 
피부에 비해 이빨이 희다는 거 
전혀 놀랄 일이 아니잖아요 

아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자세를 낮추자 
엄마가 불쑥 앞을 막아서는 거 있죠 

저는 다시 곱슬거렸습니다 
더 이상 무엇을 증명해야 할지 몰라 
사거리 한가운데서 햇빛으로 변색되는 
신호등의 오색 빛만 바라보았죠 

멀리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 
흐릿한 입모양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을 증명해야 한다고 

조금 더 큰 키와 까만 피부 
두꺼운 입술과 붉은 혀 
흰 눈동자와 조금 다른 무엇들 

고향 마을에 사는 기린처럼 
큰 키로 나뭇잎을 뜯어야 할까요 
아니면 늪지대 속 악어처럼 
입을 크게 벌려야 할까요 

사진관에서 플래시가 펑 터질 때 
그래도 김치, 하고 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고등학교부 산문부 장원 
백송고등학교(경기) 3학년 노미루 


파편 

미닫이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낡을 대로 낡은 문은 뻑뻑하기 그지없었다. 마루에 걸터앉아 색이 바랜 집을 천천히 살폈다. 유난히 이질적인 일본식 기와가 바람에 흔들려 쿵쿵 소리를 냈다. 소리에 맞춰 깨져버린 숨결들이 떠도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이 집을 싫어했다. 인생의 절반을 살았지만 도통 정이 안 가는 집이라고. 할머니가 왜 이 집을 싫어하는지 알고 있었다. 적산가옥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이질적인 일본식 기와가 있는 집. 예전에 일본으로 여행을 갔을 때 본 그 집들과 비슷했다. 
적산가옥은 이름 그대로 적들이 남긴 집이라는 뜻이다. 일제가 패망한 뒤로 일본으로 도망친 사람들이 남긴 집. 그렇게 방치된 집에 갈 곳 없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앉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그랬다. 일제에 빌붙는 기생충이라며 동네 사람들에게 욕을 먹었던 일화를 할머니는 종종 나에게 말해주곤 했다. 그래서일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평생을 적들의 파편을 지우기 위해 투쟁했다. 외로운 싸움은 할아버지가 돌아가고 난 뒤에도 계속되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집을 싫어하면서도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아마도 집 안 곳곳에 묻은 할아버지의 파편들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이사하자고 할머니를 설득했지만 세간에 먼지가 소복이 쌓이도록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쯤 되니 엄마도 거의 포기할 지경이었다. 할머니에게 이 집은 할아버지 그 자체였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참으로 투명한 사람이었다. 일제의 집에 살게 된 죄책감 때문인지, 평생을 정직하게 살아가겠다는 신념이 확고한 분이었다. 그런 신념이 투명하게 빛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방에 있던 멈춰버린 낡은 시계를 다시 벽에 걸어두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진 액자, 낡은 시계, 지팡이 등 할아버지의 애장품을 할머니는 집 안 이곳저곳에 전시해나갔다. 깨진 유리조각을 발견하듯, 할머니의 일과는 할아버지의 물건을 발견해 걸어두는 것이 전부였다. 그중에서도 할머니는 첫 번째로 걸어둔 멈춰버린 시계를 가장 좋아했다. 그 시계는 이 집에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산 물건이라고 했다. 시계는 할아버지가 돌아가기 전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할머니 같아서 나는 그 시계를 차마 쳐다보지 못했다. 
평소보다 일찍 깬 그날 아침, 할머니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절대 안 된다! 내는 그리 못한다. 니 애비 두고 어찌 내가 가노…….” 
할머니는 그 말을 끝으로 단호하게 엄마의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묻기 위해 엄마에게 전화했다. 
“그 집, 재개발하기로 했어. 잘됐지? 너도 그 집을 싫어했잖아.” 
엄마는 적산가옥이 카페가 될 거라고 했다. 할머니를 위해서는 살기 좋은 새 집을 얻었다고 했다. 나는 설명하지 못할 기분과 함께 엄마와 통화를 마무리했다. 마침내 이 집이 사라지는구나. 나는 방에 걸린 액자를 쳐다보았다. 순간, 액자가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받침대가 오래되어 늘 불안했는데, 드디어 명을 다한 것이다. 나는 깨진 유리 파편을 치웠다. 그때 할머니의 울음소리와 매미의 울음소리가 함께 섞여 들려왔다. 
재개발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할머니만 집에서 나가면 되었다. 할머니는 집을 떠나는 순간까지 말이 없었다. 애증이 담긴 손으로 할아버지의 물건들을 쓸어내리고 갈 뿐이었다. 시간이 더 흐른 뒤, 나는 한때 집이었던 곳에 가보았다. 사람이 살지 않아서 그런지 할머니의 집은 귀퉁이가 무너져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나는 추억이 된 집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적들의 집인지, 할머니의 추억인지 모를 것들이 깨져서 산산이 흩어지고 있었다. 


일반부 시부 장원 
인천 부평구 수변로 안경민 


중고 

나는 중고 책방에 갑니다 

누군가에게서 떠나온 책이 
다시 떠날 채비를 하고 가지런히 서 있습니다. 

나는 책길 사이사이를 돌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여다봅니다. 

아직도 머물러 있는 주인의 잔향 
누군가에게 보내졌던 사연의 흔적 
어느 이의 깨달음인 듯 그어져 있는 밑줄들 
그 마음들에 남겨졌을 잔상의 단어들 
누군가의 삶 속에 들어가 위로하고 
응원했을 응축된 기운들 
떠나온 서운함 뒤로 채워진 쓸모 있는 용기를 

나는 책길 사이사이를 돌며 
저마다의 응답을 차근차근 되새겨봅니다. 

누군가에게서 떠나온 책이 
다시 떠날 채비를 하고 
내 마음에 가지런히 서 있습니다. 



일반부 산문 장원 
서울 구로구 개봉로 송다경 


임시 

허리에 임시로 고정해둔 옷핀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스트레스 때문에 부어오른 옆구리 살을 견디지 못하고, 치마의 허리춤이 터져버린 것이다. 면접 대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예상 문답지를 보며 중얼거리고 있는데도, 옷핀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면접을 보는 도중에 옷핀이 터져 치마가 내려간다면, 그런 망신도 없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옷핀을 세 개나 꽂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그 순간, 내 이름과 수험 번호가 호명되었다. 
오늘 따라 면접이 유독 긴장되었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해왔지만 모두 단기직일 뿐, 진정한 내 자리는 없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PC방 아르바이트, 빵집 아르바이트…… 모두 임시직에 지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는 내 자리, 그러니까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번 면접에서 떨어지면 다음 하반기 공채를 노려야 한다. 떨어진다면 또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내 처지에 조바심이 났다. 더군다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치마까지 말썽이라니. 결국 면접과 옷핀, 양쪽에 모두 신경을 쏟느라 회사 건물을 나올 때는 그야말로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 
그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회사 근처 역 앞이니 함께 집에 가자고 했다. 높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치자 지하철역 앞에 서 있는 엄마가 보였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촌스러운 차림 때문이 아니다. 무채색의 정장들 사이에서 경고등처럼 빛나는 붉은 조끼 때문이다. 어쩌면 불길처럼 보이기도 하는 새빨간 조끼를 입은 엄마는 나를 발견하자 힘차게 손을 흔들어댔다. 
나는 엄마의 인생이 임시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학습지 교사로 일했고, 중학교 때는 시식 코너 판매원, 그리고 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함바집 식당에서 일했다. 나는 엄마의 이러한 인생이 안쓰러웠다. 항상 제자리가 없는 상태로 붕 떠 있는, 엄마의 삶은 말 그대로 ‘임시’ 위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엄마는 내가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 마트 계산원 일을 시작했다. 남들이 보기에 대단한 일이 아닌 마트 계산원이지만, 엄마에게는 처음으로 주어진 고정된 자리였다. 하지만 키오스크가 등장하면서 그 자리도 금세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구조조정 때문에 마트 계산원들에게 무턱대고 해고를 예고한 마트를 상대로 엄마와 동료 아주머니들은 몇 주째 시위 중이다. 그런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방금 있었던 면접에 대해 먼저 물었다. 
“오늘 잘 갔다 왔어? 느낌이 어때?” 
나는 면접이 곧 뜯어질 내 치마처럼 불안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엄마가 걱정할 게 뻔하니까. 대답을 망설이자 엄마는 결과가 어떻든 면접까지 가는 것도 대단하다며 고생했다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허리 쪽에 꽂아둔 옷핀이 여전히 거슬렸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엄마는 지쳤는지 자꾸만 고개를 꾸벅거리며 졸았다. 나는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몸을 혹사하면서 시위를 해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마트가 얼마든지 많으니까. 나처럼 어떻게든 부딪쳐본다면 언젠가 엄마를 받아주는 마트가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나와 다르게 뭐든 끈질기게 하는 사람이라서 금방 채용될 것이 분명하다. 지하철 객차 움직임에 따라 상체가 힘없이 흔들렸다. 창을 바라보자 붉게 노을 지는 한강과 창에 비친 엄마의 붉은 조끼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답답해, 라고 중얼거렸다. 
“엄마가 그렇게 답답해?” 
엄마가 내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지하철 소리와 사람들 말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엄마의 시선은 나에게로 향해 있었다. 엄마는 눈을 감은 채로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런 일들을 해서 여기까지 살아온 거야. 너 대학도 보내고, 이제 취업도 할 거고. 다 잘될 거니까.” 
엄마는 희미하게 웃었다.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엄마를 쳐다봤다. 매끈했던 손은 어느새 늙어 주름과 굳은살이 가득했다. 항상 옷매무새를 단정히 해야 한다고 혼내던 엄마가 입은 붉은 조끼는 어깨 부분이 곧 뜯어질 것처럼 헤져 있었다. 엄마는 얼마나 불안할까. 하지만 그 자리에서 단단히 서 있는 엄마는 나와 달랐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문득 치마에 꽂아둔 옷핀이 떠올랐다. 치마 옆을 보니 불안했던 내 생각과 달리 세 개의 옷핀이 꽤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옷핀을 떼서 엄마의 조끼 어깨에 끼워주었다. 엄마는 나를 놀란 듯 쳐다보다가 소리 내 웃었다. 
“고마워, 우리 딸.” 
단단히 고정된 옷핀과 타오르는 불길을 닮은 붉은 조끼는 엄마 그 자체인 듯 보였다. 임시로 꽂아둔 옷핀은 하나가 되어 천과 천을 단단히 연결했다. 나는 내 허리에 고정된 옷핀을 바라봤다. 어쩌면 안정된 자리란 어느 회사 사무실이나 명함에서 나오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임시로 꿴 옷핀일지라도, 임시로 잡은 직장일지라도 그것을 통해 옷이 여며지고 우리의 생은 이어졌다. 엄마의 딸, 나의 엄마. 이건 결코 임시로 주어지는 게 아닌, 영원히 지켜질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