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작품(2020년 제35회 새얼전국학생/학부모백일장 장원작품

  • 날짜
    2020-09-23 11: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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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제35회 새얼전국학생/학부모백일장 장원작품

<초등3.4학년부> 시 장원

 
마스크

 
- 인천용현남초등학교 4학년 이채민

 
치과는 싫다

치료하기 전에

긴장되고 무섭다

 
“이채민” 내 이름 부르는 말이 싫다

내 차례니까!

 
치과는 싫다

‘윙윙윙~’

기계소리가 무섭다

 
마스크가 싫다!

길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온통

치과의사 선생님이다

 

 

 

<초등3/4학년부> 산문 장원

 
혼자

 
- 인천부내초등학교 4학년 신민서

 
나는 하루에 한 번씩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나는 한 번에 시도를 멋있게 해낼 수 있다. 내가 물구나무를 설 때 마치 한 농장의 벼에 붙어 있는 초록색 애벌레처럼 냉장고에 딱 붙어서 묘기나 몇 가지 행동을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 중에는 다리로 7자 만들기, 물구나무서기를 한 상태에서 물건도 들 수 있다. 내가 스스로 해내다니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되기까지 나름 혼자서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몇 달 전이었다. 우연히 TV를 보는데 어떤 아이가 베개를 깔고 물구나무서기를 아주 멋지게 했다. ‘저 아이가 했는데 체육도 잘 하는 내가 못하겠어?’ 그래서 나는 혼자 물구나무서기를 그때부터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처음에 물구나무서기를 시도해 보았을 때 발을 머리 위로 점프해서 올리고 머리를 밑에 대다마자 옆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다시 두 번째 시도를 했다. 두 번째도 역시나 미끄러져서 팔이 구부러졌다. 팔이 얼얼하고 찢어지도록 아팠다. 계속 계속 실패했다. 그래도 포기하기는 싫었다.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물구나무서기를 했다. 연습을 하다 보니 나만의 방법을 터득했다. 내 방법은 손을 너무 벽 쪽에 대고 물구나무를 서면 내 몸이 벽에 튕겨져서 물구나무를 못 서고 손을 너무 멀리 두어도 물구나무서기를 못 한다. 내 방법대로 물구나무를 서니 안정적이고 사뿐하게 물구나무가 서진다. 물구나무를 서니까 자신감도 얻었다. 50번 정도 시도한 끝에 이제 완벽하게 물구나무를 설 수 있게 되었다.

형한테 보여줄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손에 있는 땀을 옷으로 문질러 닦아냈고, 물구나무를 형 앞에서 보여주었다. 형이 운이 좋아서 된 거라고 말할까봐 형이 말하기 전에 물구나무서기를 여러 번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서 우연이 아니라는 걸 증명도 했다. 형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내가 했던 자리에서 물구나무서기를 똑같은 자세와 위치에서 나처럼 해보았다. 당연한 결과지만 실패했다. 내가 물구나무서기 하루 선배여서 내가 옆에서 어떻게 하라고 코치를 해주었다.

“형아, 물구나무서기는 이렇게 하는 거야.”

나는 형 앞에서 시범을 보이면서 방법을 말해주었다.

“형아, 팔을 너무 장롱에 붙이지 말고, 장롱 중간에 팔을 대고, 두 발로 점프해서 발을 일자로 뻗고 서면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바닥에 베개를 깔고 물구나무서기를 했다면 이제는 베개 없이 벽이 직각이면 어디서나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다. 물구나무서기를 도전할 때 포기하고 싶었지만 일어서고 또 일어서는 것을 반복한 후에 지금의 물구나무서기를 만든 것 같다. 형도 나처럼 노력해서 꼭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나중엔 물구나무 오래서기 대결도 하고 싶다. 물구나무서기를 한 후의 모습은 모든 세상이 내 눈엔 다 거꾸로 보이기 때문에 내가 박쥐가 된 느낌이었다. 거꾸로 된 사물의 모습도 나쁘진 않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어떤 것을 도전했는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물구나무서기로 본 세상은 거꾸로 뿐만 아니라 내가 무엇이든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 날은 잊지 못할 최고로 즐거운 날이었다.

 

 

 

<초등5/6학년부> 시 장원

 
뒤통수

 
- 인천영종초등학교 6학년 서민영

 
공부하다 말고

딴짓하는데

갑자기 따가운 내 뒤통수

엄마의 눈빛 발사에

난 순간 얼음

 
조용히 우유팩에

빨대를 꽂는 순간

또 따가운 내 뒤통수

역시나 이미 앉아있는 우리 강아지

결국 반을 빼앗겼다

 
빈둥빈둥 침대에 누워있는데

또 또 따가운 내 뒤통수

이번엔 언니다

“당장 가서 양치하고 자!”

매일매일 따가운 내 뒤통수

 

 

 

<초등5/6학년부> 산문 장원

 
뒤통수

 
- 인천청라초등학교 5학년 김가윤

 
5학년 첫 학교 가는 날, 전날부터 기대에 부풀어 마음이 들썩들썩 심장이 콩닥콩닥 잠도 설치고, 학교에 들어서기 직전까지 그저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날 생각에 발걸음조차 들떠 있었다.

하지만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선생님의 주의 말씀이 들려왔다.

‘1미터 거리두기 하라고….’

이게 끝인 줄만 알았다. 아니 끝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내 눈 앞엔 친구들의 뒤통수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침시간동안 나는 할 것도 없고, 돌아다니지도 못해 꼼짝도 않고 앉아만 있었다. 내 앞엔 어떤 친구가 앉아있나, 또 내 뒤엔 어떤 친구가 앉아있나, 뒤도 돌아보고 싶고 불러도 보고 싶지만 책상 위에 쓰여 있는 주의사항.

‘뒤돌아보거나 이야기하지 않기’

또다시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앞 친구 뒤통수였다.

평소엔 별생각 없이 보던 앞 친구 뒤통수인데 심심하고 할 것도 없고 심지어 뒤도 돌아보지 못할 때의 앞 친구 뒤통수는 나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관찰대상이 되어주었다.

그 뒤로 나는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의 뒤통수를 관찰했다. 신기하게도 뒤통수는 친구들 얼굴의 눈?코?입처럼 각자의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매일 하나로 머리를 묶고 다니는 예은이의 뒤통수는 동글동글한 성격이 예은이처럼 동글했고, 유연성이 뛰어난 연재의 뒤통수엔 곱슬 머리카락들이 유연하게 구불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 똑같아 보이던 남자 친구들의 뒤통수에도 가마가 2개인 친구, 옆짱구?뒷짱구인 친구 등 각각의 특색이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생활이 전처럼 즐거울 순 없었지만 또 이 덕분에 친구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어 재미있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친구들과 활짝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더 기대하고, 뒤통수와는 또 다른 우리 반 친구들의 모습을 알아가고 싶다.

 

 

 

<중등부> 시 장원

 
구석

 
- 양오중학교(경기) 1학년 조은솔

 
구석은

외롭게 있는

한쪽 귀퉁이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구석에 구석을 더하니

구석구석 모두 다라는 뜻을 가진

전체를 이야기하는 뜻이었다

 
저기 구석에 앉아서

울고 있는 친구에게

손 내밀어준다면

 
우리는 그때

전체가 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때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중등부> 산문 장원

 
구석

 
- 인천여자중학교 1학년 김효린

 
우리 집에는 나만이 좋아하는 공간이 있다.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 고집부리다 혼이 날 때면 엄마가 생각하는 의자를 놓아주셨던 내 방의 모퉁이, 나만의 구석이 있다. 엄마께 혼나면서도 끝까지 반성하지 않고 생떼를 부리면 부드럽게 내 얼굴을 어루만져 주시던 엄마의 손이 어느새 화난 손으로 바뀌어 통통하고 하얀 팔을 꽉 잡고 생각하는 의자가 놓인 방의 한 구석으로 나를 앉혀 두었던 그 낯설었던 공간.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도 생각하는 의자에 앉아 있었을 때는 무엇이 그리 억울하고 서러웠는지 우느라 힘들어 너무 싫었던 공간이었지만, 나의 울음보를, 나의 고집을 꺾고 작은 생각이나마 했던 공간이 어느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되어 책을 읽을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그 방구석에 앉아 벽에 기대어 무언가를 하고 있곤 한다.

구석이 주는 편안함은 오롯이 나 혼자인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방구석은 나 혼자만이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아무도 먼저 차지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경쟁자도 없다. 사람들은 중앙에, 중심에 앉아 있는 것을 편하게 여기지만 나는 어디를 가든 나도 모르게 구석진 곳을 먼저 찾게 된다. 나의 중심은 가운데가 아닌 아무도 앉지 않는 구석에서 오는 것 같다. 또한 책상에 앉아 책을 읽을 때면 빙그르르 나도 모르게 돌아가는 의자 때문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은데 방구석에 앉아 책상을 배 쪽 가까이 최대한 끌어안고 책을 읽을 때면 나는 책 속의 주인공이 되는 즐거움에 푹 빠지기가 너무 쉽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때로는 용감한 주인공이 되어 학교 폭력에 힘들어하는 친구를 구해내기도 하고,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떠나간 남자 친구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엄마와 싸우고 가출하여 고생도 해본다. 책속에는 내가 너무 많아서 좋다. 그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바로 방구석이다. 코로나로 학교도 자주 안 가다보니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학교에 다니는 기간에는 과제와 수행평가 등으로 시간이 없지만 학교에 가지 않는 기간 동안에는 방구석에 기대어 온라인 강의도 듣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보물 같은 장소여서 너무 행복하다.

나는 가끔 이곳에서 울기도 한다. 엄마께 혼났을 때, 그리고 갑자기 혼자 감성에 젖어서 울고 싶을 때도 나는 이 구석에서 위로를 받는다. 구석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 탓이었는지 하얀 벽지가 노랗게 바래지려해서 엄마가 푹신한 쿠션을 놓아주셨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쿠션을 치우고 딱딱한 벽에 기대어 행복한 상상들을 하는 공간이 된다. 공부와 독서, 그림 그리기 뿐 아니라 나는 웹툰을 그리기도 한다. 하지만 웹툰을 그리다보니까 그림도 중요하지만 탄탄한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요새는 책을 더 많이 읽고, 언젠가 세상에 보여줄 즐거운 이야기가 담겨 있는 글을 쓰고 있다. 초등학교 때도 내가 심심풀이로 그린 웹툰을 친구들이 돌려보며 너무 재미있다고 다음 이야기를 그려달라고 할 때면 내가 정말 웹툰 작가라도 된 것 같아서 이야기를 고민하기도 했다.

나는 책을 읽는 것만큼 글쓰기도 참 좋다. 나의 한 획 한 획의 움직임이 모여서 사람들이 가보지 못한 곳으로 데려다주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계속 글을 쓰게 되는 것 같다. 글을 쓰는 힘도, 내 감정을 분출하는 힘도 내 마음의 구석에서 오듯 그렇게 방구석에서 나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래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은 우리 집 구석, 누군가에겐 불쌍하게 보여질 수 있는 공간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비밀의 문, 나의 방 한 곳에 자리잡은 바로 그 구석이다.

 

 

 

<고등부> 시 장원

 
다른 사람들

 
- 인천신명여자고등학교 2학년 전하람

 
먼지 쌓인 액자 속에 다른 사람들이 갇혀 있다

뭉툭한 코와 웃는 모양새가 나와 닮은

모르는 얼굴

 
나는 서랍 속 엄마의 목걸이에도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엄마가 고기를 사인 분씩 사는 것도

가끔 식탁에 밥그릇 네 개를 놓는 것도 알고 있다

 
할머니는 크기가 다른 멍을 떨리는 손으로 쓰다듬는다

내가 그들을 모르기에는

집에 쌓인 칫솔이 너무 많았고

볼펜 자국이 가구 곳곳에 굳어 있었으며

움푹한 키 표시가 여전히 벽지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나비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드디어 나비가 되었을지도

 
엄마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들의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굴었다

우리의 생일상에는 미역국이 올라오지 않는다

우리는 오래된 고전영화를 보지 않는다

비 오는 날 밥을 물에 말지 않으며

가족이 그려진 컵을 사지 않는다

 
낡은 프레임과 유리

내가 사진 속 얼굴들 사이로 바르게 겹친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쳐도 모를 사람들

둘 뿐인 가족사진에 없는

우리라는 말에서 도려내진

 
시계 지나는 소리와 액자 귀퉁이에 심어진 고흐의 해바라기 한 장

그리고 다른 사람들

 

 

 

<고등부> 산문 장원

 
경계

 
- 대전도안고등학교 2학년 김지원

 
벌써 버스 몇 대가 정류장을 지나쳐갔다. 정확히 퇴근 시간과 겹친 모양이었다. 정류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버스는 몇 분 간격으로 끊임없이 왔고, 단 몇 초 만에 승객들을 모조리 뱃속에 밀어 넣고 미련 없이 출발했다. 나는 순식간에 입을 다문 파리지옥처럼 매정하게 문을 닫은 버스를 수차례 떠나보내며 정류장에 삼십 분 넘게 앉아있었다. 하필 퇴근 시간에 버스정류장에 온 것을 짧게 후회했다.

사람들이 조금 빠지고 나서야 버스에 탈 수 있었다. 나는 종일 바퀴를 돌리느라 단단해진 팔을 조금씩 주물렀다. 버스에서는 평범한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문에 남은 빗방울이 신호등 빛을 굴절시켰다. 초점이 흐린 카메라로 도시의 야경을 찍은 것처럼 불투명한 빛들이 창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제가 난생 처음으로 오로라를 봤습니다.”

그때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평범한 여행길 숙소 앞에서 오로라를 보다니 운이 좋았어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3884님, 정말 대단한 경험하셨네요.”

누군가의 짧은 사연인 모양이었다. 말을 마친 라디오 진행자는 작게 감탄했다. 신호에 잠깐 멈췄던 버스가 다시 속도를 내어 출발했다. 건물 창문의 하얀 빛과 신호등과 가로등이 작은 물방울 하나에 빼곡하게 담겼다. 나는 알록달록한 색의 향연에 피로해지지 않도록 눈을 깜빡였다.

“오로라는 빛의 투쟁이라는 걸 아시나요?”

문득 진행자가 말했다.

“태양에서 날아온 입자들이 지구이 대기권에 부딪히며 빛을 내는 거예요. 넘어올 수 없는 선과 그 선을 넘고 싶은 투쟁의 결과물인 셈이죠. 지구와 태양의 경계, 혹은 지구와 우주의 경계.”

나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묵묵히 라디오를 들었다. 내 바로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이어폰에서 희미한 팝송이 새어 나왔다. 팝송과 버스의 엔진 소리, 라디오의 기괴한 조합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나는 각종 소리에 푹 잠겨 커브 길을 도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버스 중심이 바뀌며 휠체어의 바퀴가 조금 달각거렸다. 진행자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오로라를 보고 있으니 아름다우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입자였다면 말이에요. 어차피 뚫리지 않을 대기권이라면 파고들지 않았을 텐데 하고……. 그러다 깨달았어요. 입자들은 그 경계를 넘을 수 없지만.”

버스가 서서히 속력을 줄였다. 전자 알림판에 뜬 아파트 이름이 빨갛게 빛났다. 사람들이 소지품을 뒤적이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나는 말없이 바퀴를 꽉 잡았다.

“대기를 물들일 순 있죠. 모든 색깔로.”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버스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버스카드를 찍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 뒷문에서 나오는 장애인 전용 발판이 인도에 닿을 때까지였다. 나는 휠체어 위에 오른 채 인도에 내렸다. 버스는 내 뒤로 사라졌다. 아파트 정문이 코앞이었지만 아파트 단지 안의 집까지는 거리가 꽤 되었다. 다시 바퀴를 돌리려고 손을 뒤로 뻗었다. 그때, 무언가 손 끝에 걸렸다. 누군가 내민 전단지였다.

“생각 있으시면 나와 주세요.”

전단지를 든 사람이 내민 것은 손바닥만 한 핫팩이었다. 전단지 더미를 에코백에 도로 넣은 상대방이 뒤를 돌아 사라졌다. 나는 휠체어에 앉은 채고 오른손에 쥔 전단지를 읽었다.

‘세상이 모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위해, 시위에 참여해 주세요.’

굵은 글씨 아래로 시위 날짜와 장소가 연이어 적혀 있었다. 왼손에서 뜨끈한 핫팩의 온기가 느껴졌다.

 
나들이 겸 잠깐 다녀오는 거라고, 그렇게 다짐했지만 어딘가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분명 집 밖을 나설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막상 버스에서 내리고 나니 마음이 떨렸다. 괜히 심호흡을 했다가 목이 칼칼해 기침을 몇 번하기도 했다. 나는 휠체어 바퀴를 굴려 광장을 향해 갔다. 시위 장소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배로 늘어났다. 인도 끝에 설치된 천막 아래에서 봉사자 하나가 내게 물 한 통을 내밀었다. 먼 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며 격려하는 말도 함께였다. 나는 물통을 받기 위해 휠체어를 간이테이블 앞으로 몰았다. 그러자 제대로 보이자 않았던 봉사자의 다리가 드러났다. 무심코 닿은 시선 끝에 놓인 봉사자의 다리 한쪽이 나무였다. 나는 몇 초가 지나고 나서야 내 행동을 자각했다.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휠체어를 타지 않았을 때의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을 때의 습관이 무심코 튀어나온 탓이었다. 그러나 봉사자는 나를 향해 환히 웃고 있었다. 마치 다 이해한다는 것처럼. 예상치 못한 불에 덴 듯했다. 나는 이상한 기분에, 물통을 꼭 쥐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멀리서 바라본 광장에는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들고 있었다. 시위가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우리의 이동권을 보장해주세요!”

누군가 크게 외치며 걸어 나갔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들, 목발을 짚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나는 행렬의 제일 끝에 있었다. 인도로 걸어가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향해 기웃거렸다.

“비장애인과의 경계를 없애주세요!”

또다시 앞줄에서 선창하자, 뒷사람들이 따라 외쳤다. 나는 휠체어를 천천히 밀었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들도 지금껏 나와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오늘마저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30분이나 일찍 집에서 출발했을지 모른다. 이곳에 오기까지 아주 많은 고민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오로라는 빛의 투쟁이라는 걸 아시나요?’

혼자였다면 보이지 않았을 빛은 이제 거대한 군집이 되어 하늘을 수놓을 것이다. 그 경계를 넘을 수는 없지만 같은 하늘을 공유할 수 있도록. 나는 각자 다른 위치에서 한결같이 나아가는 뒤통수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휠체어를 세게 밀어 가까이 따라 붙었다. 작은 하나의 입자들이 모여, 견고한 대기권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학부모부> 시 장원

 

 
-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승남로 문혜련

 
공기에 자연스레 녹아들던 내 고운 숨이 그립다

소리내 하품하며 인생의 쉼표를 찍던 순간순간이 그립다

 
영원히 누릴 줄 알았기에 소중함을 몰랐던,

소중하게 가꾸지 못한 채 흘러가버린 과거의 일상이 아쉽다

 
정제되지 않은 나의 숨이 누군가에게 위협이 될 수 있기에

마스크 없이 외출할 수 없게 되어버린 지금

 
삼복더위에 마스크 속 거침 숨을 몰아쉬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매순간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누구나, 언젠가, 끊어질 숨

아직 내게 붙어있는 한

삶은 계속되어야지

새로운 일상을 소중히 가꿔나가야지

그 속에서 소소한 행복도 움틔워야지

마음껏 웃고 또 사랑해야지

 
벅찬 마음에 새로운 숨을 크게 내쉬어본다

 

 

 


<학부모부> 산문 장원

 
대기실

 
- 경기도 김포시 풍무로 김송이

 
출연자 대기실에는 아버지와 나, 단 둘뿐이었다. 말을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을 건넨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머릿속에 아버지에겐 건넨 말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아버지는 막바지 공부에 정신이 없었다.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낡은 국어사전을 침을 발라 넘겨가며 열심이었다. 작은 글씨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하나라도 더 눈에 담으려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일흔을 넘긴 아버지는 작년보다 더 쪼그라든 모습이었다. TV출연을 앞두고 긴장한 탓일까? 아버지의 입가 주름은 유난히 움푹 파였고, 숱 없는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아버지의 TV 출연 소식을 들은 건 친정 엄마의 전화를 통해서였다.

“네 아버지가 또 일을 저질렀다.”

자라면서 엄마에게 수없이 들었던 소리이다. 아버지가 음주운전을 하다가 남의 집 담장을 들이받았을 때, 가불한 월급을 유흥비로 몽땅 탕진해 버렸을 때, 다니던 직장을 상의 없이 그만둬 버렸을 때. 그때마다 엄마는 아버지가 일을 저질렀다는 소리를 했다. 마흔을 앞둔 지금까지도 그 소리는 나를 겁먹게 만들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KBS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에 또 출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4년 전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을 했었다. 한 문제도 못 맞추고 꼴찌를 할 거라는 내 예상은 들어맞았다. 젊은 출연자들의 순발력과 기억력 앞에 아버지는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신세였다. 그 망신을 당해 놓고 또 출연이라니 기가 막혔다. 평생 이해가 되지 않던 아버지였지만, 이번 아버지의 도전은 무모하고 어리석게만 보였다.

아버지의 첫 출연 당시 엄마는 나와 함께 방송국에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말하기를 주저하는 엄마에게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된 딸 핑계를 댔다. 아버지를 응원하러 가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낳았을 때도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았던 아버지를 위해 방송국에 간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아버지에게는 받은 것도, 빚진 것도 없었다. 아버지의 폭언과 폭력으로 상처 받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지켜주고 싶었다. 무능력하고 이기적인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더 이상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엄마가 간곡하게 부탁했다. 얼마 전 엄마의 오른쪽 어깨 힘줄이 파열되는 바람에 아버지와 함께 서울로 올라올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노인네 혼자 보내면 불안해서 그런다. 미우나 고우나 네 애비인 걸 어떡하것냐. 네 마음 모르는 것 아니다. 이번 한 번만 마음 좀 내봐. 부탁한다.”

엄마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내 인생의 동지이자 버팀목인 엄마의 부탁에 싫다는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와 단둘이 KBS 방송국 대기실에 앉아 있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에게 맡기고 온 두 딸 생각이 간절했다. 아이들이라도 있으면 이 어색함이 좀 덜할 텐데…. 아이들에게 말을 걸며 이 지루함과 불편함을 견뎌볼 텐데…. 대기실에는 아버지와 나 사이를 이어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애먼 손톱만 뜯어대며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반갑기만 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는 분장 담당 스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2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애교많고 싱그러운 여자였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간단한 피부 화장을 하고 머리를 조금 매만지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손길이 닿자 아버지의 주름과 검버섯이 조금씩 옅어져 갔다.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 도전하시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세요.”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버님을 쏙 빼닮은 따님이 응원하러 와 주셨으니 좋은 결과 있으실 거예요.”

머뭇거리던 아버지가 말문을 열었다.

“그러게요…. 이번에는 좋은 결과가 있어야 될 텐데…. 우리 딸이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평생 딸에게 짐이 됐는데 오늘도 짐이 됐네요. 저 데리고 여기까지 오느라 딸이 애썼어요. 결과가 좋아야 딸한테 덜 미안할 텐데 걱정입니다.”

생전 안하던 말을,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하는 아버지가 의외였다, 눈을 감고 있어서 대기실 안에 내가 있다는 걸 잊으셨나 싶을 정도였다.

“우승하시면 상금도 많대요. 상금 타시면 따님께 다 주실 거예요?”

그녀는 자연스럽고 능수능란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래서였을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아버지가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딸에게 줘야지요. 가진 게 없어서 손주들 태어날 때 돈 한 푼 못 챙겨 줬는데…. 상금 타면 딸에게 다 줄 겁니다. 늙어서 그런가…. 이제야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뼈아프게 느낍니다. 젊었을 때 술 마시고 어울렸던 사람들 중에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젊었을 땐 왜 그걸 몰랐는지…. 딸 기억 속에 저는 부끄러운 애비일 겁니다. 애비에 대한 좋은 기억 하나는 만들고 죽어야겠다 싶어서 환갑 넘어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오늘은 꼭 공부한 보람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빙긋 미소를 보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특유의 눈빛과 미소였다. 묘한 질투심 때문인지, 자격지심 때문인지 나는 그녀와의 눈맞춤을 피해버렸다. 내 시선은 대기실 바닥을 향했다.

“어머, 우리 아버님 눈가가 촉촉해지셨어요. 이러시면 화장 다시 해야 되는데…. 저랑 더 오래 있고 싶으셔서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그녀가 웃자 아버지가 따라 웃었다. 난 여전히 대기실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대기실을 나가고 다시 침묵이 흘렀다. 20분쯤 흘렀을까. 남자 스텝이 들어와서 스튜디오로 이동하겠다고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아버지는 손바닥에 찬 땀을 양복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아버지는 그새 다리가 풀려버린 듯 좀처럼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아버지의 셔츠 두 번째 단추가 풀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벌어진 옷깃 사이로 거뭇거뭇한 검버섯이 보였다. 분장을 해준 그녀의 손길이 목 아래까지는 닿지 못한 모양이었다. 주춤거리며 걸어가는 아버지 앞에 섰다. 풀린 단추를 채웠다. 그리고 챙겨간 손수건을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아버지는 손수건을 받아 들고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아버지는 한 걸음 한 걸음씩 대기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려다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대기 시간 내내 앉았던 자리로 갔다. 아버지가 앉았던 의자에 천천히 몸을 기대 보았다. 온기가 천천히 전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