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 장원작품

  • 날짜
    2017-04-24 18: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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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48

각 부문별 장원작품

 

초등학교 3·4학년부 시 장원

인천학산초등학교 3학년 오수연

도서관

심심해서 투덜투덜

엄마가 좋은 곳 간다는 말에 신나서

따라간 도서관

다다다 뛰어가는 나

두 눈 크게 뜨고 놀라서 내 손 잡는

우리엄마

끄덕끄덕 알았어요

휘리릭 휘리릭 책장 넘기는 소리

눈 흘기며 주의 주시는 우리 엄마

알겠다고 눈으로 대답합니다

암~ 하품소리 입 가려 주며

쉿! 하라는 신호

합죽이가 되어 시무룩

집에서는 말 안 듣는 미운 오리

도서관에 오면 무조건 알겠다는

나는나는 얌전한 고양이

살글살금 발꿈치 들어도

조심조심 책을 넘겨도

심심해서 몸을 비틀어도

또 오고 싶은 도서관.

 

초등학교 3·4학년부 산문 장원

인천청량초등학교 4학년  김나현

내 단짝

내 어렸을 적 단짝은 장수풍뎅이였다. 장수풍뎅이는 내가 유치원생일 때 유치원에서 받은 것으로, 내가 가장 예뻐했던 동물이다. 장수풍뎅이를 맨 처음 만났을 때는 동그랗고 작은 알이었다.

나는 장수풍뎅이를 통에 넣고, 빨리 애벌레가 알을 깨고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하루, 이틀, 사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애벌레가 나오질 않자, 나는 슬슬 걱정되었다. 그러자 엄마께서는 “조금만 더 기다리렴.”이라고 말씀하셨다.

기다림에 조금씩 지쳐갈 때쯤 애벌레가 태어났다. 나는 매우 기뻤다. 갓 태어난 새끼 애벌레는 매우 연약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애벌레는 점점 뽀얗고 토실토실해졌고, 튼튼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애벌레를 만지며 놀고 싶었지만, 애벌레가 무사히 장수풍뎅이가 되지 못할까 봐 만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애벌레가 한곳에 딱 붙어서 먹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더니 번데기가 되어 버렸다. 번데기의 색깔이 죽은 듯이 진한 고동색이어서 나는 장수풍뎅이가 죽은 줄 알고 집이 떠나갈 듯이 울어서 호빵눈이 되었다. 그러자 옆에서 보고 계시던 엄마께서 “번데기가 되어서 안 움직이고 먹지도 않는 거야. 며칠이 지나면 번데기가 곧 탈피하고 어린 장수풍뎅이가 나올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나는 안심하고 기다렸다. 그랬더니 진짜로 장수풍뎅이가 나왔다. 장수풍뎅이는 아직 어려서 몸집이 조금 작고, 갈색 등딱지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장수풍뎅이가 귀여워서 톡톡 건드려도 보고, 젤리도 같이 나누어 먹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장수풍뎅이가 늙어갔다. 나는 그새 장수풍뎅이와 단짝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장수풍뎅이가 병이 들어서 비실비실해지더니 늙어서 죽고 말았다. 나는 큰소리로 엉엉 울며 가족들과 청량산에 장수풍뎅이를 묻어 주었다. 산에 계시던 주위 사람들이 “아이고, 고양이나 개가 죽었나 보네. 어쩌나!”라고 말했다.

나는 그날 나의 소중한 단짝을 잃어서 내 탓인 것 같고 슬퍼서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장수풍뎅이야, 미안해. 다음에 다시 태어나도 언제나 너의 단짝이 되어줄게. 사랑해.

 

초등학교 5·6학년부 시 장원

인천효성초등학교 6학년 3반 신승헌

만약

독도는 우리 땅인데….

일본은 자꾸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

만약 일본 땅인 대마도를

우리가 대한민국 땅이라고

우기면 어떨까?

우리들이 뿔났다….

 

초등학교 5·6학년부 산문 장원

인천효성남초등학교 5학년 이지은

상자

상자는 나의 햄스터 초롱이의 놀이터다. 초롱이는 상자에 넣어주면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매일 상자에 넣어주는데 상자를 너무 많이 뜯는다. 얼마 전에는 초롱이가 상자에서 잘 놀고 있는지 궁금해서 초롱이를 봤는데 초롱이가 상자에 큰 구멍을 내서 탈출하기 직전이었다. 나는 정말 놀라서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래서 초롱이가 상자에 구멍을 낸 다음부터는 초롱이를 상자에 넣으면 틈틈이 확인하다가 상자를 뜯고 있으면 나는 “상자 뜯지 마!”라고 말한다. 그런데 초롱이는 내 말을 들은 척도 안 한다. 그럴 때는 초롱이가 “상자 더 뜯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조금 얄밉기도 하다. 하지만 초롱이가 상자를 뜯는 것을 좋아해서 상자에 오는 것을 좋아하니 기쁘기도 하다. 나는 초롱이를 키우기 전에는 상자에 관심이 없었는데 초롱이를 키우니까 상자 하면 바로 초롱이가 생각난다. 그래서 마트에 가면 초롱이가 갉아놓은 상자를 바꿔주고 싶어서 포장 코너에 가서 이 상자는 넓어서 초롱이가 뛰어놀기 좋은지 이 상자는 튼튼하고 두꺼워서 초롱이가 갉아도 구멍이 쉽게 나지 않는지 살펴보고 상자를 고른다. 초롱이를 키우면서 상자는 그냥 물건만 담고 마트에 가면 공짜로 가져올 수 있는 흔한 물건이 아니라 초롱이에게는 재미있는 놀이터이고 나에게는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중학교부 시 장원

삼산중학교 2학년 박성강

그 곳

높아져 가던 옆 아파트

유난히 작아 보였던

그곳

문 옆에 있던 작은 돌부리

나를 넘어뜨려 미워했었던

그곳

파리, 개미, 지렁이, 나무마저도

마냥 싫어했었던

그곳

그 흔한 보일러 하나도 없이

연탄난로 하나로

매서운 추위에

몸을 떨었던

그곳

항상 미웠고

항상 작았다

사람 냄새 안 나는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는

요즈음

드넓은 아파트 숲의 매캐한 냄새가

내 코를 쥐어 막는

요즈음

작아 보이고

허약하였고

마냥 증오했었던

그곳의

정겨운 파란 문고리

매캐한 연탄 냄새가

생각나는 요즈음

밝았던 그곳엔

세월의 그늘이 졌을까

아니면

오늘도 매캐한 연탄 냄새가

그곳을 지키고 있을까

 

 

증등부 산문 장원

인천신정중학교 1학년  서지우

그 곳에는 네가 있었다.

 

졸업식 날, 우리는 무덤덤했다. 모두 다른 중학교에 가서, 다른 친구를 사귀어야 했지만, 우리의 우정은 영원하다며 웃고 있던 우리였다. 그저 해맑은 친구였다

하지만 새로운 작은 사회에 적응하고, 수백 명 사이에서 1등을 향한 달리기를 시작한 우리에게 예전의 해맑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끔 주고받는 간단한 안부는 화면에 비친 한낱 글자일 뿐, 너는 눈앞에 없었다. 그런데도 시간은 우리의 달리기를 재촉하듯, 빠르게만 지나간다

어느 날은 초등학교에 찾아갔다. 학교에서 내준 면담하기 숙제를 위해 작년 선생님을 찾아가니, 선생님이 숨이 막힐 정도로 나를 꽉 안아주셨다. 겨우 선생님 품 안에서 벗어나고 나서 뒤늦게 선생님의 얼굴을 마주하니 마치 6학년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노는 친구는 있냐, 선생님은 어떻냐는 질문에 나는 전부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형식적인 질문을 하며 녹음을 하고는 다시 오겠다는 인사와 함께 반을 나왔다. 천천히 복도를 내려가다 보니, 눈앞에서 과거가 회상되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내 6년의 추억이 아른아른했다. 목구멍에서 뭔가가 차오른다. 내려오는 한층 한 층에 추억이 깃들어있다.

5층, 가장 순탄했던 친구 관계의 학년이었다. 친구들을 따라 괜히 관심도 없는 연예인의 팬이 되었고, 처음으로 엄마의 허락도 없이 버스를 타고 먼 곳을 갔다 오는 첫 일탈을 하였다.

4층, 단짝이 욕도 많이 하고 남자애들과 많이 놀았다. 어쩌면 욕도 이 친구에게 배웠고 친구 관계가 많이 꼬여서 여러 가지 일도 많았다. 지금 보면 좋은 친구는 아니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그 아이를 쫓아다녔던 걸까, 하며 생각에 빠져든다.

3층, 3~4학년 시절을 보내던 곳, 3학년 때 내게 딱 맞는 친구를 사귀었지만, 4학년 때 크게 싸우는 바람에 사이가 끊어졌었다. 정말 많이 울고 후회했었던 것 같다.

2층, 마냥 해맑기만 하던 그때. 왜인지 모르겠지만, 자꾸 힘을 자랑하고 싶어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힘이 세서 남자애들이 무서워하기도 했지….

1층, 처음 엄마 손을 잡고 들어온 반. 전부 새롭고 신기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 담임 선생님도 정말 친절하셔서, 덕분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다음 층은…… 없었다. 더는 내려갈 계단이 없었다. 결국, 나는 발길을 돌려 학교를 나왔다. 운동장에는 내 후배들이 뛰어놀고 있다. 내가 피구를 하던 자리엔 더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서 있었다. 내가 체육 시간에 몰래 앉아서 친구들과 떠들던 자리엔, 다른 누군가가 앉아있다.

“아, 나 진짜 졸업했구나….”

막상 실감이 나기 시작한 졸업에 또 다른 감정이 마음속에서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막상 실감이 나기 시작한 졸업에 또 다른 감정이 마음속에서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우리가 있던 자리, 그곳에 너는 있었다. 그것만은 확실하기에, 나는 다시 운동장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강하지도 너무 조용하지도 않은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귀로 넘겨놓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통화음 뒤에 오랜만에 듣는 듯한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온다.

“야, 너 연락도 안 하냐? 너 오늘 학원 없잖아.”

우리가 앞으로 향하게 될 길은 다르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것은 상관없다.

“오늘 시간 돼? 언제 한번 만나서 놀자.”

나는 또 다른 ‘그곳’에서 너를 기다릴 거니깐.

 

 

고등학교부 시 장원

고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이다혜

소리

눈을 뜨고 죽는 것은 아직 볼 게 많아서라고,

입을 벌리고 죽는 것은 할 말이 남아서라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대영상회 고등어는 미련도 많다

눈도 입도 닫지 못한 채 절망하는 얼굴

그 지느러미에 새겨진 물결의 웃음소리를,

비늘을 간지럽히던 해수의 속삭임을 남자는 팔고 있다

수족관마다 생선 울음소리 한 움큼씩 잡힐 듯하다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은 피라미 떼처럼 재달대고.

고등어 이천 원- 고등어 이천 원-

호객하는 남자는

죽기 직전 몸부림치는 생선을 닮았다

생을 호객하는 남자가

시장 골목에서 가장 깊은 곳의 소리를 팔고 있다

미처 하지 못한 고등어의 말들이 공기 방울로 떠돌고,

사람들은 골목을 헤엄쳐 나간다

건져 올려진 고등어가 뜰채 위에서 춤춘다

고등어 이천 원- 고등어 이천 원-

대영상회 남자가 입을 벌린 채 좌절하는

바다의 아우성을 팔고 있다.

 

 

고등부 산문 장원

한국삼육고등학교 3학년 황보영

새빨갛게 피어난 남천 묘목들이 떼를 지어 타오르고 있다. 묘목의 씨를 심었던 곳마다 솟아오른 붉은 상처들, 화훼농장은 마치 새빨간 해일에 둘러싸인 것 같았다. 겨울, 곧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어머니는 툇마루에 앉아 입김을 내 불며 가만히 흔들리는 남천 잎사귀들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손을 뻗어 흔들리는 앙상한 가지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그때, 날카로운 바람을 이기지 못한 잎사귀 몇 장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어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이 흔들리고 있는 수백 송이의 불꽃들은 누군가에게 짙은 흉터나 마찬가지였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아, 울긋불긋한 남천 묘목도 해 질 녘 그늘로 슬그머니 고개를 숙인다. 어머니는 거실 한쪽에 붉은 남천 잎들을 쌓아 놓고서 작은 바구니에 그것들을 차곡차곡 담고 있었다. 거실 구석에 둥그렇게 쌓여 있는 잎사귀들. 그것은 꼭 저들끼리 붉은 무덤을 쌓아 올린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무덤 같은 잎들이라기엔 그것들은 너무 생생히, 그리고 붉게 타오르는 중이었다. 손을 갖다 대면 화상이라도 입지 않을까 하는 붉음. 어머니가 품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이만큼이나 강렬한 것일까. 나는 남천 잎사귀들 앞으로 다가가, 봉긋하게 뭉쳐 있는 그것들을 손으로 헤쳐 풀어 놓았다. 와르르 쏟아지는 겨울 냄새. 어머니는 바구니를 정리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그 엎질러진 잎사귀들을 가만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꽃바구니를 만든 지 일주일 째 되는 날.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서 툇마루로 나가 여전히 사부작대며 흔들리고 있는 남천 묘목들을 내다보셨다. 엄마가 왜 나무를 좋아하는지 아니? 잘 보듬어주면 피어난 순간부터 꺾이는 순간까지 맘대로 떠나가 버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야.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던 바구니를 마른 손길로 집어 들었다. 바람에 흔들려 종아리를 간지럽히는 남천 잎사귀들. 슬프도록 향긋한 어머니의 손이, 눈이 엉겨 차갑게 얼은 남천 잎사귀를 쓰다듬는다. 볼을 에는 칼바람이 절대 살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바구니를 든 채 한동안 그 불꽃의 바다 사이에서 헤매었다.

어머니는 언 손을 녹이지도 않은 채, 차가운 겨울바람을 걷으며 아버지의 묘를 찾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무덤에 쌓인 눈을 맨손으로 쓸어 털어내고는, 그 위에 남천으로 엮은 화관을 올려놓는다. 어머니의 바구니에 담겨 있던 것은 남천 가지를 엮어 만든 화관들이었다. 주변은 온통 하얬지만, 아버지의 무덤 위만은 붉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떨리는 손끝이 비석 위의 세 글자를 더듬는다. 아버지의 무덤엔 녹지 않는 겨울 꽃 화관이 사철 내내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그 불처럼 번져가는 어머니의 그리움엔 척도도 없고 계절도 없으므로.

 

 

어머니부 시 장원

조여진

비닐봉지

검은 비닐봉지가 바람에 춤을 춘다

아지랑이 흐름에 리듬을 맞추어

너울너울 제 모양대로 날아다닌다.

어디든 제 쓰임이 있었을 터인데

본디 자신을 잊어버리고

제비인양 낮은 도약을 시도한다

어쩌면 ‘행복한 왕자’의 심부름꾼

어쩌면 ‘흥부 놀부’의 심판관

봄을 알리는 검은 선을 긋는다

그가 그은 위편으로

아직 여물지 않은 봄이 내리고

그가 그은 아래편으로

아직 아물지 않은 겨울이 잊혀진다

그로부터 봄이 오고,

그로부터 겨울이 잊혀진다

하늘을 오가며 본디의 자신을 찾는다.

그의 향은 시골의 구수한 고구마 향

늦은 귀가길 아버지의 사랑.

 

 

어머니부 산문 장원

노은희

기차역

번번이 어머니가 발견되는 곳은 기차역이었다. 목적지가 없는 어머니는 퀭한 표정으로 대합실에 앉아 사람들 눈에 띄곤 했다. 춘천까지 이어지는 고속화 철도가 생기면서 더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기차역에 앉아 긴 시간을 보내는 어머니는 사람들 눈에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앓고 계신 뇌수막염은 가까운 기억은 멀어지게 만들고, 먼 기억은 가깝게 만드는 치매 증상과도 비슷해 어머니는 수시로 기차역을 찾으셨다.

우리가족은 어머니께 큼직하게 전화번호가 박힌 목걸이를 채워 드렸고 집 밖으로 외출을 자제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더는 배웅할 사람도 없고, 더 이상은 마중 할 사람도 남지 않은 기차역에서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던 걸까? 아마도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하시는 어머니를 곱지 않은 눈으로 흘기며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자식들에게 서운하셨을 것이다. 더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간이역이지만 그 곳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말을 걸어 주고 자신에게 신경을 써 주는 것 같아서 누군가가 자신을 살펴 주는 느낌이 좋아서 기차역을 찾으셨던 건 아닐까? 역 관계자들의 전화를 받고 기차역을 찾는 것이 매번 미안스럽기도 하고 마치 어머니를 방치하는 듯 여기는 것 같아서 내심 못마땅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을 어머니 스스로 알리고 다니는 것 같아 속이 상하고 화가 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급속도로 정신이 희미해진 어머니는 더는 기차역조차 찾지 못했고 무료한 표정으로 하루하루 해를 넘기는 일이 잦아졌다. 쓸모가 없어진 기차역이 한산해진 건 순간이었다. 깨끗하고 속력이 높은 청춘열차는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했고 모두들 낡은 기차역을, 지난 시간과 추억을 떠올리지 못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삶도 기차와 많이 닮아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이 필요했을 때 우리는 수시로 어머니를 찾았고 일방적으로 어머니께 희생을 강요하며 살았다. 타지로 나가 공부하던 여식을 기다리던 기차역, 가끔 찾아오는 아들 내외를 반갑게 맞이하던 시간은 초라해진 기차역과 함께 보잘 것 없이 늙은 시간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앞만 보며 달려온 어머니의 시간이었다. 일찍 아버지를 떠나보낸 어머니는 가정의 생계를 위해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했고 고단한 생을 이겨내도 늘 당신 것을 챙기지 못했다. 당신의 외로움이 오롯이 전해지며 그제야 나는 후회가 밀려왔고 서러웠다. 다소 냉정한 성격이었던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하면서도 어머니의 입장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삶의 질을 운운하며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배가 고프고 식탐을 부리는 모습은 당신답지 못해 퍽 실망스러운 것이었고 이왕이면 멋스럽게 생의 여정을 마무리 지어 주길 원했다.

우리 동네를 지나는 청춘열차는 그 이름만큼이나 한창 때라 비싼 요금을 내더라도 사람들이 쉬지 않고 찾는다. 쾌적하고 빠르며 사람들이 많지 않은 역은 정차하지 않고 통과한다. 시간과 돈에 쫓겨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 보다 좋은 친구가 또 있을까, 하지만 고속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창밖의 풍경을 모두 잃어 버렸고 넌지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추억하고 세월을 노래하는 생의 진정성을 상실해 버렸다. 더는 어머니가 찾던 기차역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뵐 수가 없다. 홀로 헛헛했던 시간에 마음을 열고 당신의 친구가 되어주지 못한 눈물 흘리는 딸의 모습만 남았을 뿐이다.

나는 나의 어린 아들에게 기차역에 대한 어떤 기억을 남겨 줄 수 있을까? 늘 도착 시각 보다 먼저 나와 계시던 어머니, 이제 들어가셨나 돌아보면 그 자리 그대로 서서 손을 흔들어 주던 애정이 넘치는 어머니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뭐가 그리 바쁜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도 걸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시간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당신이 없는 빈 시간이 허무하게 찾아오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자식이 된다. 이제부터라도 아들 녀석에게 사랑이 가득한 기차역을 선물해 주어야겠다. 이제는 내가 기차역에 앉아 어머니를 마중하고 아쉽게 배웅하며 산다. 만남과 헤어짐의 사연이 그렁그렁 배어 있는 기차역은 오늘도 여러 이웃의 삶의 얘기에 귀 기울여 주고 있다. 어렸을 때, 오빠와 나 단둘이서 기차를 탔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와 함께 시골 할머니 댁을 찾았다가 사정이 생겨 아버지는 함께 못 오시고 기차에 우리만 태워 보내셨던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다소 긴장한 우리 남매의 손을 꼭 붙잡고 “역에 도착하면 니그 엄마가 나왔을 기라.” 말씀하시며 우리를 안심시켜 주셨다. 기적 소리 울리며 떠나는 기차 안에서 우리는 아버지를 향해 씩씩하게 손을 흔들었지만 이내 아버지의 모습이 뵈지 않게 되자 공연히 마음이 서러워졌었다. 연년생인 오빠도 나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오빠 옆에 꼭 붙어 앉아 징징대며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했었다.

긴 여행길의 끝에서 우리는 엄마와 만났다. 어린 남매만 기차에 오른 것이 마음 놓이지 않았던 어머니는 플랫폼에서 초조하게 기다리시다 우리를 와락, 끌어안아 주셨다. 나는, 때때로 그 날 숨이 콱 막히도록 나를 안아주셨던 어머니의 품이 그립다. 오늘도 기차역은 그 따뜻한 기억을 품고 마음 속 철로 위를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