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제29회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 장원작품

  • 날짜
    2014-04-29 12:56:08
  • 조회수
    5211

제29회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

초등학교 3·4학년 산문부 장원

인천부내초등학교 4학년 이산

제목 : 잊지 못할 일

나에게 잊지 못할 일이 하나 있다.
내가 할머니께 글자를 가르쳐 드린 날, 솔직히 말해 할머니를 ‘무시한 날’이다.
“할머니 그렇게 쓰는 게 아니고요오-.”
“나도 글자를 좀 아는디 눈이 침침해 안 뵈서 그라지-?”
“근데 할머닌 학교 안 다녔어요? 왜 글자를 몰라요? 다 틀렸잖아요?”
“배웠는디 썩 까먹어서 그랴. 몰른 언문은 우리 강아지가 갈켜 주면 되제이-?”
시골 할머니는 내가 뭘하든 “우리 갱아지, 이쁜 갱아지 참 잘하네이.” 그러신다.
2학년 여름방학 때다. 할머니는 큰 달력을 찢어 오시더니 뒷면에 언문을 써보라고 하셨다.
나는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썼다. 눈이 침침해서 잘 안 보인다고 연필을 입에 넣었다 뺐다 하셨다.
침을 발라야 글자가 잘 써지고 잘 보인다는 것이다. 웃기고 아이 같았다. 어른이 연필을 입에 넣다니…….
사촌 오빠랑 배꼽 잡고 웃었다. 나중엔 파란색 연필을 드렸더니 커서 좋다고 하셨다.
한번은 텔레비전 ‘가요무대’를 보고 할머니가 아는 노래라고 따라 부르셨다. 아주 오래되고 누런 공책에 여러 개의 노랫말이 쓰여 있었다. 잘 썼냐고 봐달라고 하셨다. 노랫말을 혼자서 써 본거다. 알고 싶은데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나? 그 순간 할머니가 가엾어 보였다. 받침 있는 글자들은 다 틀려 버렸다.
소리 나는 대로 써 놓은 거다. 엄마가 어려운 책도 많이 읽어서 할머니는 당연히 잘 읽고 잘 쓸 줄 알았다.

할머니는 달력에 꾹꾹 눌러 쓴 글자들을 넘겨보며 흐뭇해하셨다. 하지만 난 삼일 째 되는 날은 짜증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 오빠와 놀고 싶었는데 글자 쓰기만 하자고 해서다.
『백설공주』에서 대충 세 문장 써 놓고 엄마한테 보여주라고 했다.
엄마는 읽고 싶은 책 다 사보면서 할머니 글자도 안 가르쳐주고 엄마가 미웠다.
자꾸 할머니가 생각난다. 끝까지 할머니를 무시하지 말고 글자를 가르쳐 줄 걸.
할머니께 더 좋은 친구,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었는데, 진짜로.


초등학교 3·4학년 시부 장원

인천은봉초등학교 3학년 김미연

제목 : 꽃잎

꽃잎이 피면
나가 놀아도 돼요.
장갑 끼어라
목도리 둘러라
엄마 잔소리가 없어요.
노는 게 좋아요.

꽃잎이 피면
나가 놀아도 돼요.
감기 걸릴라
얼음판에 넘어질라
엄마 잔소리가 없어요.
노는 게 신나요.

꽃잎이 지고
꽃비가 하얗게 내릴 때
엄마는 아파서 병원에 갔어요.
엄마 잔소리가 없어요.
놀아도 하나도 재미없어요.

 

초등 5,6학년 산문부 장원

인천정각초등학교 6학년 유민

제목: 체육시간

나는 천식이 있다. 그래서 체육시간마다 스탠드와 함께였고 친구들이 뛰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친구들은 체육시간에 운동장도 뛰지 않고 편안히 쉬는 나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내가 뛰고 싶어 한다는 걸. 그리고 내가 자신들을 부러워한다는 걸 말이다
3월 3일, 바로 올해의 새 학기가 시작하던 날, 체육 선생님의 첫 수업은 우리 1반과 함께였다. 땡땡땡 하며 수업 시작종은 울렸고, 우리는 체육 선생님과 첫 대면을 했다.

체육 선생님은 길고 긴 자기소개를 시작했고 자기소개가 끝난 후 선생님께서 하신 첫 말은 “체육 좋아하는 사람?”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손을 들었다.
작년부터 같은 반이던 내 짝꿍은 손 안 들고 뭐하냐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만 소외된 느낌에 울적해져 억지로라도 손을 들려는 찰나 “체육시간을 싫어하는 사람이 둘이나 되다니……. 선생님 좀 실망인걸?”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타고 들려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둘?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비슷하게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 아이 하나가 보였다.
그 아이는 주위를 둘러보다 자신을 바라보던 나와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킥킥 웃었다.
“야 저기 파란 리본 머리띠 쓴 여자애 누구야? 저기 2분단 셋째 줄에 앉아 있는 애 말이야”
“쟤? 쟤 이서정이잖아. 작년 5반 반장 이서정. 쟤 몰라?”
내 짝꿍은 그것도 모르냐는 말투로 대답했다. 기분이 살짝 나빠져 그 아이를 흘겨보았다.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고 운동장 체육시간이 돌아왔다.
운동장으로 간다는 말에 기분이 좀 울적해져 터덜터덜 발걸음을 내딛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숫자와 씨름하던 아이들은 체육시간이라며 좋아했다.
휴, 저 아이들은 내 마음을 알까…….
체육 선생님께 체육을 못한다고 말씀 드리려 선생님, 하고 부르려는 순간, “선생님! 잠깐만요!”누군가 선수를 쳤다.
누군지 보니 서정이었다.

“제가 심장이 약해서 체육을 못해요. 저기 스탠드에 앉아 있을게요.”
“저, 선생님? 저는 천식이 있어서…….”
대충 얼버무린 뒤에 서정이 옆에 앉았다. 서정이는 뜻밖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매일 실내화주머니들 사이에 외롭게 앉아 있던 체육시간이었는데. 하나에서 둘로 늘어 버렸다.
무언가…… 좋은 예감이야.


초등 5,6학년부 시 장원

인천학산초등학교 6학년 추주훈

제목 : 눈물

방울방울 눈물이
주르륵 뺨을 흘러내린다

한 번의 실수로 진도 앞바다에는
또 다른 ‘바다’가 생긴다.

배에 있는 사람들은 다 없어지고
모두 바다가 되어간다.

눈물이 쌓이고 쌓여
바다를 만든다.

그 안에는 우리의 눈물이 있다.

영원히 멈추지 못할 눈물…….

 

 


중학교 산문부 장원

산곡여자중학교 3학년 송소민

제목 : 창(窓)

비가 내린다.
나는 비 오는 날이 싫다. 아니, 비가 오는 주말이 싫다.
내 방 민무늬 연두색 벽지가 생기를 잃고 쾌쾌한 냄새를 뿜어 놓으면 내 기분도 덩달아 가라앉는다.
옆에서 밥도 차려주고 설거지도 하는 엄마가 있으면 그래도 좀 낫지만, 아무도 없는 집을 나 홀로 지키게 되는 날이면 하루 종일 창밖 회색빛 세상을 하릴없이 바라보고만 있다.

그래서 나는 비가 오면 학교를 간다.
줄줄이 엑스표로 채워진 출석부의 ‘김지혁’란은 비 오는 날에만 동그라미가 그려진다.
가끔 들춰보면 정말 가뭄에 콩이 난 것만 같은 모양새라 픽 하고 웃음이 난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헤드폰을 꺼낸다. 새 것 마냥 윤이 나 반들반들하다.
내 물건 중 유일하게 엄마 돈으로 산거다. 엄마한테 웬만해선 손을 벌리지 않으려고 하는 나지만, 그 헤드폰을 살 때만큼은 만만찮은 가격에 엄마, 죄송한데 저것 좀 사주세요, 했다.
엄마는 놀란 표정을 지으시다 이내 의아해하셨다. 아마 내가 무언가를 사달라고 한 것이, 무언가를 부탁한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헤드폰을 쓴 나를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어서 그러셨을지도. 하기사, 음악은 나와 실로 먼 사이가 된 지 오래다.

그래도 엄마는 군말 없이 그 모델을 사 주셨다. 꽤 비쌌음에도 엄마는 거침없이 지갑을 열었다. 그리고는 이번 생일 선물을 미리 사준 거라며 크게 미소지었다. 나도 알았다며 크게 미소 지었다.
헤드폰 줄을 마저 푼다.

그리고 헤드폰에 비해 다소 낡은 티가 나는 엠피쓰리를 꺼내 끼운다. 헤드폰을 가만히 쓰고 칠판을 바라보면 금세 심심해진다. 왼손은 헤드폰에 올리고 오른손은 엠피쓰리를 쥔다. 매끄럽고 둥그런 헤드폰이 끼워진 흠집투성이 엠피쓰리가 이질적이다. 안 어울리지만 새 것을 살 필요는 없다. 어차피 아무 노래도 들어있지 않다. 나는 다시 칠판으로 눈을 돌린다.

하지만 가끔 학교를 안 가는 주말에 비가 온다. 그럼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에 붙어 있는다.
학교를 가면 오고가는 길에 툭툭 떨어지는 비를 손바닥에 그러모을 수 있다.
나는 손만 뻗으면 달려드는 그 시원한 감촉이 좋다. 금방 튀고 굴러 달아나 버리지만 손금 사이사이에 아직 남아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런 비를 보고만 있으면 너무 슬퍼진다.
나는 빗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청각 장애인이라는 조건은 항상 내 발목을 잡았다. 좋아하던 피아노 소리도, 엄마의 목소리도, 빗소리도 듣지 못하게 된 나는 특수학교를 다니기로 했지만 거의 나가지 않았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전선이 끊기지 않아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보고, 비가 오면 지루한 몇 시간을 헤드폰을 끼고 버텨내는 대가로 잠시 비를 만졌다. 시끄러운 장애인 친구들이 입만 벙끗벙끗하는 것을 더는 볼 수가 없어 듣지도 못하는 귀에 헤드폰을 씌우고 나는 ‘적막’을 듣고 있노라 생각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공에 맞아 청력을 완전히 잃고 나서 나는 의연한 척을 하며 살아왔다.
힘든 내색을 하지도 않았고, 남들 앞에서 울지도 않았다.
남에게 절대 도움을 받지 않고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내게 청각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장애인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도록 헤드폰을 쓰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은 가지 않았다.
엄마도 부러 내 앞에서 소리 내어 웃지 않고 방그레 미소만 지었다.
나는 들려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내 장애를 실감하고 무너져 내렸다.


안간힘을 쓰며 버텨온 칠 년은 전보다 그 슬픔을 무뎌지게 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빗소리가 들리지 않아 슬프다.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도 나를 외면한다. 바닥에 고인 물에 닿아 켜지지 않는 텔레비전, 녹이 단단히 슬어 잘 열리지 않는 창문, 그리고 열어달라며 창문을 두드리는 비.
나는 창을 열어줄 수가 없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부 장원

명현중학교 2학년 김도경

제목 : 습관

습관은 내 스토커이다.
내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언제나 쫄래쫄래 따라온다.

습관은 자명종이다.
주말에도 7시만 되면
찌르릉 찌르릉 소리친다.

습관은 교복치마다.
분명히 교복바지를 입었는데도
앉을 때 조심조심 앉는다.

습관은 비밀번호이다.
숫자들이 떠오르지 않아도
손은 이미 번호를 누르고 있다.

습관은 악보다.
기타치다 다음 코드가 생각이 안나도
익숙하게 다음 코드를 잡는다.

습관은 지점토인가 보다.
원하는 모양대로 조금만 굳히면
계속 유지되는 지점토

내 지점토는 동글동글 예쁘게 굳어졌을까?

 


고등학교 산문부 장원

부평여자고등학교 3학년 최여울

제목 오해

햇빛이 운동장의 인조잔디를 비추며 세상을 옅은 올리브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눈발처럼 흩날리던 벚꽃들이 아직은 서늘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창밖을 보던 시선을 거두고 정면을 향했다. 칠판엔 수학공식들이 가득 채워져 있고 선생님이 꽂고 계신 마이크에서 나오는 소리만이 교실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고3. 아이들은 꿋꿋이 눈을 치켜뜨고 손을 움직이기 바빴다.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곤. 나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려 아예 엎드려 자고 있는 서윤이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은 책상에서 숨을 내쉴 때마다 전해지는 흐릿한 담배 냄새는 주변을 이루고 있는 그 어떤 것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아이들은 서윤이와 같은 반이 된 나를, 짝이 된 나를 두고 말이 많았다. 괜히 먼저 말을 걸거나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게 아이들의 충고 아닌 충고였다. 서윤이에 대해 이리저리 떠도는 소문은 많았다. 성격이 많이 예민하고 싸움은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잘해서 그런지 다른 학교 아이들과도 문제가 많아 경찰서도 몇 번 갔다 왔다는 말들은 내 마음을 무겁게만 했다.
 
4교시 과학시간에 어쩐 일로 깨어있던 서윤이가 선생님이 틀어주신 동영상을 보며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나를 툭툭 치는 손끝과 내 쪽으로 돌려진 고개, 눈빛 등의 모든 것들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내가 서윤이를 바라보았을 때 내 눈을 막아버린 것은 서윤이의 핸드폰 속 작은 상어사진이었다.
“상어. 나 이거 집에서 키운다. 멋있지?”
“좀 무섭지 않아?”
서윤이와 대화를 계속 이어나간다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우리 쪽을 힐끔거리는 반 아이들의 시선이 꺼림칙했다.
“처음엔 무서웠는데 이젠 재밌어. 상어에겐 다른 물고기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거든.”
그 비밀이 뭔지 궁금하긴 했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른 답답한 공기를 더 이상 돌이킬 수가 없어 나는 대화가 빨리 끝날 법한 질문을 던졌다.

“그래? 부모님은 허락하신 거야?”
“허락은 무슨. 집에도 잘 안 들어오는데.”
서윤이는 더 이상 말을 하기 싫은지 예전처럼 또 입을 닫고 책상에 누워 고개를 돌렸다. 따스했던 기운이 어느 순간 차갑게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임서윤. 일어나 봐라.”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학생주임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다짜고짜 서윤이를 깨웠다.
선생님의 막대기가 서윤이의 팔뚝을 깊게 파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화장실도 가지 않고 선생님과 서윤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 역시 긴장이 돼서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너 옆 학교 중학생들 때렸니?”
“저 애들 때린 적 없는데요?”
점점 얼굴이 벌게지는 선생님과는 전혀 다른 태연함으로 서윤이가 말했다.
“우리 학교 교복이었다는데 인상착의도 너 같고 우리 학교에 그런 짓 할 애가 너 말고 또 어디있어?
 너 내가 한번만 더 사고치면 가만 안 둔다 했지? 네 동생도 이번에 학교 들어왔다며 동생이 뭘 보고 배우겠어? 조용히 하고 학생부로 따라와.”
“나 아니라고요. 선생님이 나를 그렇게 잘 알아요?”
교실을 나가던 선생님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선생님은 눈에 힘을 한가득 집어넣은 서윤이를 바라보았다.

꽤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침묵이 깨지고 선생님이 서윤이를 보며 내일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 했다.
부모님 이야기에 표정이 뚜렷하게 달라진 서윤이는 이내 걸상에 걸려 있던 가방을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 뒤로 오랫동안 서윤이를 보지 못했다.

위에서부터 내리쬐는 햇볕이 땅 속에서부터 아지랑이를 피워내고 있었다.
이제 아이들은 본격적인 입시에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며칠 전, 서윤이는 학교에 왔었다. 자퇴수속을 밟기 위해서였다.
반 아이들도 선생님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어제도 봤고 내일도 볼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담담히 대했다.
서윤이는 그날 처음으로 수업시간에 단 한번도 자지 않았다.

물론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었지만 모든 것을 하나하나 다 담아두려는 듯 집중하며 주변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여기. 이거 받아.”
서윤이가 작은 사진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사진 속의 상어는 서윤이의 핸드폰 속 상어와 같았다.
“상어들은 이빨을 다 드러내놓고 다니거든. 웃기지?”
한참을 사진만 들여다보던 내게 낮은 목소리로 서윤이가 물었다.
“그러게. 이빨이 되게 뾰족한 게 무섭다.”
“무서워 안 해도 돼. 다른 물고기들 겁주려는 것도 아니야. 숨 쉬려고, 안 그러면 죽게 되니까 그러는 건데 모두들 오해하는 거지.”
상어를 이야기하는 서윤이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건 너 가져. 상어의 비밀 알게 된 기념으로.”
오랫동안 내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가끔은 서윤이가 아직도 내 옆에 엎어져 자고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나는 손바닥을 곧게 펴서 한손 가득 서윤이의 책상을 어루만졌다. 햇빛을 받은 책상처럼 목 끝이 뜨거워졌다. 뭐라 그렇게 답답하고 불안했니 너는…….

빠르게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을 맞게 된 나뭇잎들이 소리를 지르듯 시끄럽게 바스락댔다.
따끔거리는 나의 목덜미를 타들어갈 정도로 조를 것 같았던 더운 바람은 순식간에 나의 목을 휘감아 따스하게 어루만져주었다.

 

고등학교 시부 장원
신송고등학교 3학년 4반 백준우

제목 : 기적

미음완보, 앞서가는 오후 햇살을 따라
느릿느릿 배다리 헌 책방 골목을 걷는다

하인천역을 출발한 전철이
무릎 아래 책방들을 흔드는 소리에도
고양이는 미동 없이 낮잠을 즐기고
나보다 오랜 세월을 견뎌왔을 묵은 문장들이
노끈에 묶여
새로운 낯선 무릎 위에 앉아 있는
기적을 꿈꾸는 배다리,

낡은 등들을 맞대고 차곡차곡 쌓여 있는 헌 책들 틈으로
아벨서점 나비날다책방 대창서림 집현전 한미서점 삼성서림이 만든
낯익은 숲길이 기적같이 이어져 있다


생각 없이 꺼낸 책의 한쪽 날개를 넘기다가
순식간에 온 마음을 빼앗기고 만
숲의 냄새, 숙성된 문장의 향기에 배어
나는 오래 머물렀다

여기저기 밑줄로 남아있는
누군가 머물고 간 발자국을
누나의 연애편지인 듯 훔쳐보았다

종착역을 향해 붉은 숨을 토하는
봄날의 햇살들은
이팝나무 꽃송이 위에서 은빛 운율을 만들고
헌 책들도 마침표 없는 새 이야기를 예감하는 곳
오늘도,
느릿느릿 배다리 숲길을 걷는다

 

 


어머니부 산문 장원

강은옥

제목 : 잔주름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방문 사이로 들려오는 주름진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오늘따라 구슬프게 들린다.
얼마 전 시골에 홀로 계신 친정엄마께서 우리 집에 들르러 오셨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나는 결혼 후 친정 부모님을 한번도 집으로 초대해본 적이 없다.
2년 전 친정아버지께서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나서야 밀려드는 후회라니…….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에미야, 애들 외할머니 시골에 혼자 계실 텐데 집으로 한번 모셔와라” 하시는 말씀에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엄마! 이번 주에 우리 집으로 와. 언니네 집으로 가지 말고. 알았죠?”
너무 기쁜 마음에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괜찮겠니?”
내 걱정부터 하는 엄마다.

“어머니께서 엄마 맛있는 밥상 한번 차려드리라고 하신거야. 걱정하지 말고 꼭 와야 돼!”
그 주말에 엄마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에 바리바리 보따리를 들고 오셨다. 언니네와 동생네 집마다 들러 들기름이며 나물 등을 모두 나눠주고 마지막으로 우리 집으로 오신 것이다.

젊었을 때, 공장에서 사고로 한 팔을 잃으시고 남은 한 팔로 평생 고생만 하시던 우리 엄마! 그 마징가처럼 튼튼한 것만 같던 엄마의 한 쪽 팔이 그날따라 힘겨워보였다.
집 안으로 들어오시며 부끄러우신 듯 살포시 웃으시는 엄마의 얼굴에 그 옛날에 보이던 잔주름은 없어지고 깊게 패인 굵은 주름만이…….

엄마와 시어머니는 11년이라는 나이 차이에 비해 겉모습은 서로 친구같이 닮으셨다. 친정엄마는 72세, 시어머니는 83세. 사돈이라는 단어로 묶인 두 어머니는 어딘지 닮아 보인다.
특히 얼굴에 패인 주름이 웃는 듯, 우시는 듯한 얼굴 표정을 만들어 내신다. 볶은 파마머리, 내 어깨 정도의 비슷한 작은 키까지, 정말 세월의 조화인 듯 어색할 것 같던 사돈 사이는 그렇게 닮은꼴로 하나인 듯 엮어져 있었다.

아침 일찍 구성지고 애틋한 친정엄마의 노랫소리 사이로 박자도 음정도 맞지 않는 어머님의 노랫소리가 나를 눈 뜨게 했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로 시작되는 최신 트로트 노래를 엄마는 어디서 배우셨는지 멋들어지게 부르신다.

어머님은 연신 웃으시며 “어쩜 그렇게 노래를 맛깔스럽게 잘하세요?” 하시면서 따라 부르신다. 같은 노래를 한 자리에서 열 번도 넘게 부르시며 어머님께 가르쳐드리지만, 매번 틀린 음을 그대로 부르시는 어머님. 보다 못한 우리 집 막내딸이 “할머니,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구요~” 하면서 한 소절 뽑는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일텐데도 외할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금방 배운 모양이다.

저녁 준비를 위해 시장에 다녀왔다.
나갈 때도 두 분은 소파에 나란히 앉으셔서 노래를 부르고 계셨는데, 돌아와보니 여전히 그 노래만 부르고 계셨다. 이제는 외울 법도 하시건만 어머님의 노랫소리는 아직도 그대로다.
하지만 난 어머님의 박자, 음정 틀린 노랫소리가 너무 좋았다. 그 노래를 부르시며 오랜만에 들어보는 두 엄마의 웃음소리가 너무 좋았다. 마치 사춘기 소녀들처럼 깔깔거리며 웃으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엄마가 시골로 돌아가시는 날, 어머니의 얼굴에 아쉬움과 서운함이, 곧 다시 놀러오라시며 눈물까지 글썽거리시는 모습에서 나는 너무 죄송함을 느꼈다. 함께 산다면서 어머님을 너무 외롭게 해드린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시골로 혼자 돌아가시는 친정엄마의 얼굴에 패인 주름은 오실 때보다는 조금 메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며칠 동안 엄마와 함께 했다는 나의 마음이 그렇게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동안 두 엄마와 함께 하면서 큰 효도란 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작은 즐거움과 함께 하는 행복이 두 엄마의 깊은 주름을 잔주름으로 바꾸게 한 건 아닐까?

오늘도 어머니는 여전히 방에서 맞지 않는 박자와 음정으로 흥얼대고 계신다. 어머니가 그 노래를 완전히 다른 노래처럼 부르시기 전에 친정엄마를 얼른 모셔와야겠다. 엄마들의 얼굴의 잔주름을 위하여…….

 

어머니부 시 장원

김향

제목 : 안개

새벽 어스름 하이얀 꽃이
푸른 산봉우리를 스멀스멀 타고 오르던 봄날
내 안에 붉은 등을 매달아 놓은
당신

파아란 하늘 속 연이 되어
당신이 죈 얼레에
온 생을 걸고
또 다시 우주를 꿈꾸었습니다

우주로 날아든 당신의 젖은 눈을
오랫동안 보듬고도 싶었습니다

너울거리는 아지랑이 빛깔로
당신의 다순 숨결에
씨실날실 사랑의 무늬를 수놓는
지금,
당신은 바람처럼 먼 산만 휘돕니다

봄빛에 당신 맘 가져다 놓고
밤마다 한껏 품어보려는데
아직도 봄나무엔
찬바람이 서걱이고
당신은 먼 하늘가에서
꺼이꺼이 울음의 강만 짓고 있습니다

당신 그리고 나
그 틈에 피어있는
하이얀 꽃
안개 어느날쯤 걷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