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백일장 산문부문 장원작품(초등3.4학년부~어머니부)

  • 날짜
    2009-05-06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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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부문
-------------------------------------초등3/4학년부

냄새


경인교육대학교부설초등학교 3학년
염 수 민

 

  어느 날 공부를 하고 있는데 `띠리링` 소리와 함께 아빠가 늦게 퇴근을 하고 돌아오셨다. 나는 아빠를 반겨 드리려고 나갔는데 아빠가 신발을 벗는 순간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서 짜증을 내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아빠가 `어이, 딸내미!`하며 들어오시는 순간 나는 코를 막으며 `아, 진짜~` 하고 문을 `쾅` 닫고 거실로 나가 버렸다. 바로 발 냄새 때문이었다. 아빠는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내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나에게 짜증 한 번 안 내시고 곧장 욕실로 들어가시더니 씻고 나오셨다. 그 일이 있은 후 아빠는 집에 들어오시면 항상 욕실로 들어가시는 것이 일상생활이 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아빠한테 어떤 잘못을 했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회사에서 무리하게 일을 하시다가 그만 다리가 골절 되서 회사에 나가실 수가 없게 되셨다. 그러자 엄마와 아빠의 말싸움이 잦아지곤 했다. 아마도 경제적인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아빠가 다치신 후로 더 이상 우리 집에서 발 냄새는 나지 않게 되었지만 내 마음 속에는 무언가 허전함과 걱정이 들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아빠의 발 냄새를 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발 냄새 속에는 내가 학원에 다닐 수 있고 엄마의 얼굴에 웃음이 묻어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빠한테 발 냄새 난다고 짜증냈던 일이 점점 후회되기 시작했다.

 

 한 달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회사에 다시 출근하시게 된 아빠가 퇴근해서 돌아오신 날 다시 우리 집에는 쾌쾌한 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나는 짜증내지 않고 아빠를 반겨드릴 수 있게 되었다. 아빠의 발 냄새로 인해 우리 집은 다시 활기찬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아빠의 발 냄새는 우리 식구에겐 곧 행복이다. 오늘 집에 가면 아빠의 발을 꼭 씻겨 드려야겠다.

 


-------------------------------------초등5/6학년부

공터


인천구산초등학교 6학년
신 유 정

 

 우리 엄마의 일상은 마치 일하는 개미처럼 아주 바쁘다. 저녁 다섯 시가 되면 일 하러 가셔서 새벽 두 시쯤에 들어오신다. 또 몸이 아파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외삼촌을 침대에 눕혀놓고 잔다. 도중에 일어나셔서 외삼촌을 반대편으로 눕히고 다시 잔다. 또 아침 일곱 시가 되면 나와 내 동생 학교 보낼 준비를 한다. 이게 우리 엄마의 일상이다. 요즘에는 경기가 좋지 않아서 다른 엄마들도 일을 한다. 그러나 우리 엄마가 더 바쁜 이유가 있다. 바로 우리 외삼촌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 엄마와 아빠가 만나기도 전에 외삼촌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외삼촌은 목 아래로는 완전히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갓난아이처럼 말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외삼촌은 엄마의 몫이 되었다. 엄마가 여자 형제들 중 가장 맏이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렇게 10년 정도를 외삼촌을 돌보며 살았다.

 

 어느 날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눈을 떠 보니, 시계는 새벽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말들이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학교 갈 시간이 되어 일어나 보니 외삼촌 방문이 먹이를 문 사자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무언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에 큰 돌덩이를 얹은 채로 학교에 갔다 왔다.

 

 돌아와 보니 외삼촌 방에는 외삼촌이 없었다. 외삼촌은 이모네 집에 갔다고 한다. 외삼촌이 이모네 집에 가고 밤이 되어 엄마가 일을 나갔을 때, 집에는 나와 내 동생만 남았다. 좁은 집안인데 공터에 나 혼자 있는 것처럼 너무 썰렁하고 무서웠다. 나도 외삼촌이 싫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외삼촌이 없으니까 외삼촌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외삼촌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엄마가 외삼촌이랑 싸운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삼촌이 이모네 집에 간 뒤 엄마는 늘 어둡고 우울해 보였다. 아마 그 당시 엄마의 마음도 아무도 없는 공터 같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2주 정도 후, 외삼촌이 돌아왔다. 나는 엄마에게 어떻게 화해를 했냐고 물어보았다. 엄마는 외삼촌이 문자로 사과, 즉 화해를 요청했다고 말해 주셨다. 외삼촌이 돌아온 뒤 엄마는 전처럼 외삼촌을 잘 돌보아 주셨다. 또 엄마의 마음속 공터에도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었다. 아침에 엄마는 외삼촌이 혼자 가리지 못하는 대소변을 다 치워주고, 외삼촌을 휠체어에 태우고 밥을 준다. 나는 이렇게 외삼촌을 도와주는 엄마를 보고 외삼촌에게 엄마는 마치 등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외삼촌과 엄마가 10여 년을 함께 살면서 항상 외삼촌과 엄마의 마음에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터가 될 때마다 서로의 마음의 공터에 꽃과 나무 그리고 사랑을 심어 준다면 아마 세상 그 어떤 곳보다 아름다운 공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중학교부

자전거

 

연성중학교 2학년
이 세 희

 

 봄이 되면서 맑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이 자전거를 끌고 하나, 둘씩 집을 나선다. 따르릉 거리며 자전거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것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마 자전거를 끌며 신나하는 아이들과 자전거를 애마 다루 듯 애지중지하는 아빠의 모습이 겹쳐 보인 탓일까.

 

 작년 4월이었다. 회식이 있다던 아빠가 아직 오시지 않았다. 아무리 회식이라지만 늦어도 너무 늦는 것이었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는데 엄마의 격앙된 목소리에 잠이 화들짝 깼다. 계속해서 엄마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지금 경찰서라고? 무슨 소리야, 도대체!”

 

그러자 수화기 속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웅얼웅얼 들려오는 것 같았다.

 “면허가 취소되면 어쩌자는 거야!”

 

엄마의 그 말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거실로 달려 나갔다.

 “엄마, 무슨 일이야? 아빠가 면허 취소 됐대? 왜? 도대체 무슨 일인데?” 하며 물었다. 사연인즉슨, 아빠가 음주 운전 단속에 걸려 면허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새벽 세 시쯤에야 돌아온 아빠는 얼굴에 머쓱함을 띠며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왕 이렇게 된 거 고유가 시대이기도 하고 자전거를 끌고 다니자고 하신 것이었다. 이때까지 장을 봐올 때도 차로 이동하고 심지어는 가까운 거리의 회사조차 차를 끌고 다닌 아빠가 과연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바로 다음날 아빠는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큰소리를 뻥뻥 치고는 자전거 한 대를 사오셨다. 처음엔 잘 타고 다니시지 않는 것 같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이제는 집 앞 슈퍼에 갈 때까지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다. 내가 왜 이렇게 자전거 타고 다니시는지 여쭈어 보았더니 옛날 중학교 때 자전거 타고 읍내를 돌아다니던 추억이 떠올라서라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자전거에게 정이 들면서 세세한 부품까지도 자전거에 달아주려고 한다.

 “세희 엄마, 자전거에 라이트 하나만 달게 돈 좀...” 하며 눈치를 보는 아빠는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아빠는 그만큼 자전거를 한낱 고철덩이 이동수단이 아닌, 각별한 애정을 갖고 대하는 것이었다.

 

 요즈음도 아빠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신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자전거를 타고 봄바람을 느끼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 같다며 오히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자신을 부러워할 거라고 생각한다. 자동차에 갇혀 바삐 이동하느라 주변의 소소한 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모를 거라고 하셨다. 자동차가 없어 불편하다고 투덜댔던 엄마와 나도 이제는 어딜 가든 항상 따라다니는 자전거를 새 식구처럼 여긴다. 그래서 나는 지나가는 자전거를 볼 때마다 아빠의 넉살좋은 웃음과 자전거에 대한 살가운 눈빛이 떠올려진다. 자전거는 아빠에게, 아니 우리 가족에게 그냥 물건이 아닌 아주 소중한 식구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아빠는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서신다.


 

-------------------------------------고등학교부

기차를 타고

 

양주백석고등학교 3학년
박 지 은

 

낮의 세상은 고요했다. 나는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내 눈을 찔렀다. 눈이 따가웠다. 나는 쏟아지는 빛을 등지고 앉았다. 텔레비전 속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 집만 딱딱하게 굳어버린 기분이었다. 아빠의 코고는 소리가 깊은 적막을 조금씩 밀어내었다. 나는 아빠를 바라보았다. 따갑던 눈이 축축했다.

 

“아빠도 다른 아빠들처럼 양복입고 넥타이매고 나한테 회사간단 말 해주면 안 되는 거야?”

 

나는 아빠 옆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고등학생의 중요한 방학기간을 아빠와 단둘이 집에서 보내긴 싫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찢긴 수강증이 손에 잡혔다.

 

“학원은 이제 포기할래.”

 

나는 애써 웃음 지었다. 텔레비전 속에서 익숙한 동요가 흘러나왔다.

 

“장난감 기차가 칙칙 떠나간다 …….”

 

나는 동요를 작게 따라 불렀다. 조심스럽게 아빠 옆에 누웠다. 손끝에 딱딱한 무언가가 잡혔다. 동생이 갖고 놀던 장난감 기차였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동요에 맞춰 기차를 움직였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기차가 내 마음을 시리게 했다. 어린 동생의 환히 웃는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빠의 거친 숨소리가 마치 기차가 움직이는 소리 같았다. 나는 장난감 기차를 아빠의 몸에 가져다댔다.

 

“과자와 사탕을 싣고 …….”

 

나는 내 손가락을 장난감 기차에 태웠다. 내 손을 태운 장난감 기차는 아빠의 발쪽에서 서서히 출발했다.

 

“장난감 기차가 출발합니다. 승객들은 안전띠를 꼭 매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환히 웃으며 기차에 대고 말했다. 장난감 기차는 내 손을 따라 움직였다. 기차는 천천히 아빠의 발을 지나갔다.

 

“이번 역은 아빠 발 역입니다.”

 

나는 아빠의 발을 바라보았다. 거뭇거뭇한 발가락 사이에 깨진 발톱이 보였다. 나는 천천히 아빠의 발톱을 향해 손을 가져다댔다. 문득 어릴 적 아빠가 책장에서 동화책을 꺼내준 일이 생각났다. 키보다 높은 책장에 손을 뻗는 나를 본 아빠는 의자를 밟고 올라가 책을 꺼내주었다. 괜스레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의자에 힘겹게 서 있는 아빠 다리를 붙잡았다. 잠시 후, 어어,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빠는 의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의자에 눌린 아빠의 발톱은 지금까지도 쑥쑥 자라지 못했다. 나는 아빠의 발톱을 만져 보았다.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아빠의 발톱 모서리에 남아있었다.

 

“다음 역은 아빠 배 역입니다.”

 

아빠의 코고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나는 아빠의 넓은 배를 손으로 문질렀다. 따뜻한 온기가 손바닥에 퍼졌다. 친구와 싸운 날에도, 시험을 잘 치르지 못해 울적했던 날에도 아빠는 바다만큼이나 넓은 배로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나는 아빠의 배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 한 방울이 아빠의 옷 위에 떨어졌다. 짠 바다의 맛이 느껴졌다.

 

“다음 역은 아빠의 얼굴 역입니다.”

 

나는 장난감 기차를 아빠의 얼굴 앞에 내려놓았다. 삶의 깊은 상처가 주름이 되어 아빠의 얼굴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이만큼이나 낡아버린 아빠의 얼굴을 그동안 왜 모르고 있었을까. 나는 아빠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댔다. 아빠의 거친 피부가 손가락 끝에 느껴졌다.

 

“아빠의 잘 생긴 얼굴이 이리되어서 어떡해.”

 

나는 아빠의 얼굴을 계속 쓰다듬었다. 아빠의 코고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아빠의 눈에서 따뜻한 물이 흘러 내렸다.

 

“괜찮아, 괜찮아. 미안해, 우리 딸.”

 

구불구불한 산길을 닮은 아빠의 얼굴이 움직였다. 미소 짓는 아빠의 얼굴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장난감 기차를 멀리멀리 밀어 보냈다.

 

“아빠, 있잖아. 이 기차 우리 집이랑 많이 닮았어. 우리 힘들어도 그저 지금은 구불구불하고 포장되지 않은 길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자.”

 

나는 아빠의 두꺼운 손을 잡았다. 아빠도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래. 우린 같은 기차를 탄 가족이니까, 포기하지 말고 힘을 내자꾸나.”

 

아빠의 슬픈 미소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아빠와 나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이 우리를 보고 환히 웃는 것 같았다. 지금은 힘들어도 꼭 밝은 날이 오리라. 나도 파란 하늘을 향해 웃어보였다.


 

-------------------------------------어머니부

친정 아버지

 

은봉초등학교 3학년 우수인 학생 어머니
심현숙

 

“이젠 그만 좀 피워요.”

 

오늘도 엄마의 잔소리로 아침을 연다.

 

“콜록, 콜록, 콜록…….”

 

아버지는 안방을 자욱하게 담배 연기로 채워 놓으셨다. 우리 아버지는 작은 시골 마을의 경찰이었다. 그래서인지 늘 꼿꼿한 자존심을 지켜왔다. 덕분에 아버지 퇴직 후 어머니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사춘기였던 내 마음에도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하나둘 커지고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방학 때가 되자 용돈이라도 좀 벌어보려는 생각에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10시가 막차였는데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어영부영하다보니 차 시간을 제 때 맞추지 못하고 말았다. 발만 동동 구르다가 동전 몇 개를 꺼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받을 거란 예상과 달리 아버지의 담배에 절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차가 가버렸어.”
“데리러 가?”
“올 수 있어?”
“가야지 뭐….”

 

전화를 끊고 단박에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조금만 가면 불빛 많은 거리도 끝인데…….’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는 것을 보면서 불안해하고 있을 무렵 희미하게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 말라서 관절부위가 툭 드러난 초라해 보이는 아버지…. 자전거를 끌고 막내딸을 마중 나오신 아버지의 모습은 10년 전 카랑카랑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찾아 볼 수 없었다.

 

“타.”

 

나는 싱긋 웃으며 자전거 뒤에 올라탔다. 비틀비틀 자전거는 출발하기 시작했고 나는 아버지와의 약간은 서먹서먹한 짧은 여행을 하는 듯 했다.

 

“뭐하다 차를 놓쳤어?”
“친구들이랑 놀다가…….”
“지지배, 일찍 댕겨.”
“……”

 

별달리 할 말도 없고 비틀거리는 자전거가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부앙하며 덤프트럭이 우리 자전거 옆을 지나고 난 화들짝 놀라 자전거에서 펄쩍 내려버렸다. ‘아빠도 아셨겠지. 내가 내린 걸….’ 하지만 내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아버지는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아빠! 아빠아!”

 

차 소리 때문인지 아버지의 뒷모습은 계속 멀어질 뿐이었고 내 입가엔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정작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흉가가 있는 골목길은 혼자 가야할 판이었다. 골목길 입구에서 조금 망설이다가 하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걷고 있을 때,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진 아버지가 자전거를 손으로 끌고 오고 있었다.

 

“미친년, 내리면 내린다고 얘길하고 내려야지… 차에 치인 줄 알고 얼마나 놀란 줄 알어?”

“불렀단 말야, 계속 불렀는데 아빠가 그냥 가버렸어.”

 

아버지는 얼마나 놀랐는지 손까지 조금씩 떨고 있었다.

 

“가!”

 

아버지랑 남은 골목길을 거의 다 빠져나올 때쯤 어머니도 오고 계셨다.

 

“찾았어? 성당 갔다 오는데 수진엄마가 당신이 현숙이 찾으러 정신없이 가더라고 하잖아, 어떻게 된 거야?”

 

난 그제서야 웃음이 나서 어머니에게 오늘밤 아버지랑 있었던 일을 얘기해 드리고 아버지는 아까보다 나아진 얼굴색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또또또, 저 담배는…… 나가서 피워요!”

 

그 뒤 5년 후에 난 인천으로 시집을 갔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잔소리 속에서도 담배를 태우며 노년의 쓸쓸하고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다.

둘째 아이가 돌이 다 되어갈 무렵 어버이날이 가까워져 친정 부모님을 미리 뵈어야겠단 마음으로 논산 친정을 찾았다. 아버지는 약한 감기 기운이 있다며 약을 계속 드시고 어머니는 저녁에 뜬금없이 아버지가 올해를 넘길까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관절이 안 좋아서 걷기도 힘들고 계속 열이 나는데 약을 먹어도 듣질 않는다며 감기가 아닌 것 같다고…. 왠지 모르게 얘길 듣고 있는 내 마음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쿵 내려 앉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버지는 고열로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집에 갈 시간은 가까워 가는데 아버지의 열은 좀처럼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동네 병원을 다 뒤져서 해열제를 사다가 드시게 해보았지만 아무 차도가 없었다.

 

“현숙아! 얼른가, 얼른 가라고!”

 

아버지가 울먹울먹하는 나에게 화를 내듯이 말씀하셨다.

 

“어머니, 무슨 일 있으면 얼른 연락하세요.”

 

남편은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부탁하며 우리는 집으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그만 울어. 괜찮으실 거야.”

“불쌍해 죽겠어. 내가 너무 미워했었단 말이야.”

“나도 어릴 땐 우리 부모님한테 그런 맘 있었어. 앞으로 효도하면 되지.”

 

남편은 우는 나를 다독여주며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 새벽 따르릉따르릉하며전화벨이 울렸다. 불길한 느낌의 전화벨에 우리는 깨어났고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빠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워했던 거 용서해줘….’

 

내 마음속의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리는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