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民免而無恥

  • 날짜
    2016-08-12 11: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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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음식과 술, 선물은 먹고 마시고 뜻을 전하는 예물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고, 습관과 문화로서 어느 나라나 존재하는 풍속입니다. 이것을 고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1969년 1월에 공포된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이 1973년과 1980년에 개정되어 지금까지도 유효하게 존속되어 왔지만, 오늘날 이 법률을 알거나 이 법을 지켜야겠다고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어느덧 50년 전의 법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법률이 효과가 전혀 없었고, 실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법안 중에서도 합리적인 것은 우리 생활에 스며들어 지금도 작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 서민들이 생각하기에 합리적이지 않거나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데도 강제로 찍어 누른 법조항은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 잊혀졌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발표된 신문 내용은 퍽 충격적이었습니다. OECD소속 34개 국가 중27위를 차지할 만큼 한국의 부패문제가 심각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속하는 한국 사람으로서 대단히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한국 사회가 아무리 어지러워도 예로부터 고절(孤節)한 선비사상이 면면히 이어져온 나라였습니다. 비록 내가 몸소 실천하기는 어려워도 옳은 사람을 존경하고, 그를 따르는 열정이 불같고, 긍지가 높은 사람들이 우리 민족입니다. 그래서 김영란 법이 나오고 헌법재판소에서는 이를 합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법이나 탁상 위의 숫자놀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식사 값은 3만 원, 선물은 5만 원, 경조사비는 10만 원 또는 식사, 선물은 5만 원, 경조사비는 10만 원 등으로 정해놓고 이를 어길 시에는 법에 의거해 처벌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란 뜻입니다.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 보면, `법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린다면 백성은 죄만 면하면 부끄러운 줄 모른다. 그러나 덕으로 이끌고 예로 처리한다면 부끄러움을 알고 바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공자의 유명한 `民免而無恥(민면이무치)`입니다. 다시 말해 법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망만 빠져나가면 만사형통이라는 의식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를 이처럼 혐오스럽게 망가뜨린 주범이란 것입니다.

김영란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첫째, 시민이 노력하면 지킬 수 있는 법이 되어야 합니다. 강제가 없는 법은 존재할 수 없지만,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논리와 방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흐르는 물이 앞에 큰 바위가 있으면 막히는 듯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앞으로 흘러가듯 다소 불편이 따르더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지킬 수 있는 법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업종에 따라 생계에 손해 보는 사람들을 줄이거나 없어야 합니다. 법을 시행하는 데 있어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안 됩니다. 법은 위반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나에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할 때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지도자들과 여유 있는 사람들이 이 법을 지킬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 나라 서민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법을 잘 지킵니다. 법률은 거미줄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약한 사람이 걸리면 꼼짝 못하지만, 힘이 세고 재물을 가진 사람이 걸리면 줄을 찢고 달아나 버리기 때문입니다. 과연 힘과 돈과 세력이 있는 사람들도 이 법을 충실히 지킬까요?

모처럼 시작된 법이니만큼 반드시 성공해야 하겠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서민의 삶 그리고 생활과 관계된 규제는 역사와 문화, 풍속이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차분하게 연구하여 시민과 함께하는 사회문화운동이 있어야 합니다. 의식의 변화 없이 생활과 사회가 저절로 개선되는 법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평범한 진리를 지도자들이 숙지하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김영란법’은 가진 사람, 권력 있는 사람, 특수한 위치에 있는 사람 그리고 시민의 정서를 잘라 아프게 하는 ‘갑’의 횡포와 범죄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지 일반 서민이 불편한 법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인천일보> 2016년 8월 10일자에 `김영란법과 서민`이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