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不止不行

  • 날짜
    2014-10-10 09: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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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子貢 B.C. 520~B.C. 456)은 공문십철(孔門十哲) 가운데 한 사람이며 뛰어난 이론가이자 이재(理財)에도 밝아 공자 주위에서 경제적으로 이바지한 바 크다고 되어 있다. 『사기(史記)』에는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재물을 모았지만, 세상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했다고 평한 것으로 보아 학자보다는 경세가(輕世家)였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멀리 출타 중에 공자의 종신(終身)을 지키지 못했다 하여 스스로 다른 제자들보다 두 배의 시묘(侍墓)를 하며 스승에 대한 예를 다하지 못한 것을 참회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느 날 자공이 공자에게 가르침을 구했다.

“저는 공부하는 데 지쳤습니다. 이제 그만 쉬면서 임금이나 섬기고 싶습니다.”
“임금을 모신다는 것은 시퍼런 칼날 위에 서서 춤을 추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며 여론은 먼 산 정상의 뜬구름 같은 것이거늘 어찌 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시경(詩經)』에도 내 뜻과 같으니라.”
“그렇다면 저는 쉬면서 부모님이나 섬기고 싶습니다.”
“부모를 모신다는 것은 좋은 음식과 귀한 옷으로는 부족하고 온 가족이 효(孝)와 성(誠)으로 충만하여 가문의 분위기가 빛나야 하는데 어찌 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시경에도 내 뜻과 같으니라.”
“그렇다면 저는 쉬면서 처자와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처자를 거느린다는 것은 형제간의 화목, 아이들의 교육, 이웃과의 조화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나라를 편안케 하는 기초가 되는 일인데, 어찌 쉴 수 있다고 가볍게 보느냐. 시경에도 내 뜻과 같으니라.”
“그렇다면 저는 쉬면서 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친구와 함께 지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친구를 새로 얻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필요에 의해서 사귄다면 벗이 아니며 아는 사람은 많아도 진정한 친구는 적은 법이다. 험난한 과정을 함께 하는 친구가 몇이나 된다고 어찌 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시경에도 내 뜻과 같으니라.”
“그렇다면 저는 쉬면서 농사나 짓고 싶습니다.”
“농사를 짓고 산다고 것은 공부하는 것보다 편한 것이 아니다. 봄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땡볕에 나가 김매고, 밭 갈고 가을이면 곡식을 거둬들이고 지붕을 이어야 하고 이웃과 협동체를 일구며 생활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어찌 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시경에도 내 뜻과 같으니라.”
“그렇다면 저는 쉴 곳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무덤의 봉분을 바라보아라. 높고 우뚝하고 그릇을 덮어놓은 것 같구나. 저것을 보면 쉴 곳이 어떤 곳인지 알 것 같은데.”
자공은 이에 대해 탄식하면서 “위대하도다. 죽음이여! 군자는 쉬게 되고 소인도 모두 일을 그만두게 되는구나!”

이것은 『순자(荀子)』 「대략(大略)」편에 나오는 글로 한 편의 서사시 같이 유장하며 비유가 직설적이어서 폐부를 찌르는 멋이 있다.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새롭게 번안(飜案)하여 소개한 것이다.

인류는 태어나서 앞으로 내달리기만 했다. 이 근래에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등 목표를 세워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그 노예가 되어 정신없이 떠밀려 왔다. 직장에서 바쁘게 일하고 퇴근하고 나와 술 마시고, 노래하고, TV보고, 잠자는 것만이 쉬는 것이라 착각하는 생활의 연속이다. 기도하고 명상하고 참선에 드는 것은 휴식이 아니다. 이것은 자기 성찰과 절실함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혼과 내면의 에너지가 끝없이 소모되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노동 뒤의 휴식과 기쁨은 그 노동이 격렬하고 쓰라릴수록 더욱더 큰 것이라고 했다지만,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임시직이 더 많은 사회에서 휴식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멈추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不止不行)”는 것은 휴식이 에너지와 행복의 근원이라는 깨달음은 인류가 오랜 생활의 경험을 통해 얻어낸 슬기다. 마음의 휴식은 자기 각성으로도 가능한 것이지만, 사회생활에서 휴식은 무엇보다 사람의 가치가 우선되는 사회분위기가 보편적으로 충만해야 가능하다. “사람은 능히 도를 넓힐 수 있지만, 도는 사람을 넓힐 수 없다(人能弘道 非道洪人)<위령공편 28>.”는 말이 『논어(論語)』에 있다. 이것은 사람이 없는 도나 법률은 공허하다는 사회적 인간가치 선언이다.

공자는 이 한 마디로 인문학의 비조가 된 것이다. 또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삼국유사』 등 단군신화에서 비롯되는데, 이것은 국조(國祖) 단군의 건국이념이며 고조선 개국 이래 우리나라 정치와 교육의 최고 이념으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자리 잡고 있다. 이 또한 인간의 가치 선언을 역사적으로 입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가질 수 없다면 공자가 지적한 것처럼 무덤을 바라보는 고통스러운 삶의 연속일 뿐이다, 휴식이 없는 사회는 사색도, 활기도 없는 사회이며 또한 위험한 사회임을 우리 다 함께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