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왕도(王道)와 패도(覇道)

  • 날짜
    2014-04-11 15: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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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게 안회(顔回)라는 제자가 있었다면 맹자에게는 공손추(公孫丑)가 있었다. 사서(四書) 중 하나인 『맹자(孟子)』에서 맹자(孟子, B.C372~B.C289)와 그의 제자 공손추와의 대화 첫머리에 나오는 내용을 간추려 보면 “선생님께서 만일 제나라의 요직을 맡게 되신다면 업적이 대단했던 제나라 제상 관중(管仲, ?~B.C645)과 안영(晏嬰 ?)의 공적을 다시 재현할 수 있겠습니까?” 물으니 맹자는 제자인 공손추를 제나라 촌놈이라고 꾸중하면서 ‘왜 나를 그들과 비교하느냐?’고 언짢아했다.

다시 제자가 묻기를 “관중은 그가 모시던 임금을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안영은 그가 섬긴 주군의 이름을 천하에 널리 알리는 공이 있는데 그들이 부족한 인물이란 말입니까?” 이에 맹자는 “임금을 패자(覇者)로 만들고 이름을 천하에 높이 알리는 것보다 왕도(王道)로서 천하를 통일하는 계책이 더 중요한데 그것이 내 손안에 들어 있다”고 기백을 토한다.

공손추가 말한 관중과 안영은 과연 어떤 인물들인가. 관중은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이다. 포숙아(鮑叔牙)라는 훌륭한 친구가 있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훗날 재상이 되어 자기 뜻을 이룩한 사람이다. 공자 역시 젊어서는 그를 비판했지만, 노년에는 관중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관중의 정치철학에 대해 사마천(司馬遷, B.C145?~ BC86?)은 『사기(史記)』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 바 있다.

“창고에 물자가 풍부해야 예절을 알며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위에서 내린 명령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민심에 순응해야 한다.” 이 근래 정부에서 ‘규제’를 풀자고 대통령까지 나서는데 2천8백여 년 전에 벌써 백성들이 원하는 것은 원하는 대로 베풀어주고, 백성들이 반대하는 것은 그들의 뜻대로 제거하자고 주장했다.

안영은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등 삼대에 걸쳐 오십여 년에 걸쳐 재상을 지냈지만, 밥상에 고기반찬을 두 가지 이상 놓지 못하게 하고, 첩에게 비단옷을 입지 못하게 했을 정도로 일상생활이 검소했다. 그러나 임금의 정치가 올바른 경우에는 그 명에 순종하고, 올바르지 못한 경우에는 그 명의 옳고 그름을 가리어 실행했다.

임금에게 간언할 때는 임금의 낯빛에 조금도 상관하지 않고, 직언하였으니 그 용기가 참으로 대단했다. 그래서 사마천은 조정에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자신의 잘못한 것을 보충하는 안영, 사마천은 만일 안영이 지금 살아있다면 그를 위해 마부가 되어 채찍을 들어도 행복하다고 할 정도로 흠모했다. 이토록 훌륭한 업적과 명성이 있는 관중과 안영을 맹자가 깎아내린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관중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현신(賢臣)이었으나 공자는 소인이라고 하였다. 제나라 환공이 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도와 왕도를 실행하도록 하지 않고, 다만 힘과 무력으로 우두머리가 되는 패자로 만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맹자는 천하를 왕도로서 꾸려나갈 용기와 지략이 충만한 학자이며 정치가였기 때문이었다. 관중과 안영의 업적을 모를 리 없지만, 맹자는 위민(爲民)사상을 중심으로 왕도와 패도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왕도를 귀하게 여기고 패도를 천하게 여겼다. 요컨대 인의(仁義)와 덕(德)이 마음에 가득차서 그것이 선정으로 표출되는 것이 ‘왕도’이고, 겉으로는 인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 ‘패도’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맹자에게 있어 덕과 힘은 원칙적으로 서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왕이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면 그를 갈아치워야 한다(諸侯危社稷, 則變置).”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정당성을 확립하지 않았는가! 당시로써는 대단히 파격적이고 용기 있는 논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역대 어느 왕조도 공자를 대성전(大聖殿)에 모셨지만, 맹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왕조도 많았다.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이 과거 시험에서 『맹자』를 아예 삭제해버렸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왕조의 통치자에게 역성혁명이란 생각하기도 싫은 금기였기 때문이었다.

근래 TV에서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정도전(鄭道傳)>은 맹자를 깊이 연구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성계(李成桂, 1335~1408)로 하여금 고려 왕조를 엎어버리도록 연출된다. 시청률이 점점 높아진다는데, 이것은 시민들이 현실정치와 사회·경제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감성을 통해 우회적으로 표출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2014. 04. 09>

* 이 글은 인천일보 2014년 4월 9일자 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