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죽산 조봉암 동상 건립기금 모금에 나서며

  • 날짜
    2011-06-01 11:31:01
  • 조회수
    1937

새얼문화재단은 꿈꿔왔습니다.
우리 겨레가 하나 되어 남과 북이 함께 평화를 누리고, 남과 북이 자유롭게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길…. 우리는 너무 오래 눈물 흘렸고, 너무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인천은 한반도의 단전으로 역사 이래 우리 겨레가 대륙과 해양으로 통하는 숨구멍이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냉전과 분단이 본격화된 이래 인천에서 나고 자랐거나 인천과 관련을 맺었던 백범 김구, 죽산 조봉암 선생이 목숨을 걸고 평화통일운동에 나섰던 것입니다. 냉전과 분단의 엄혹했던 시대의 무게에 짓눌리고, 질식당해 끊어질 것 같았던 평화통일정신이 인천을 관류하며 끊어지지 않고 그 맥이 이어졌습니다.

 

1959년 7월 31일 오전 10시 30분, 재판부의 선고 18시간 만에 집행된 죽산의 사형은 이 땅에서 평화통일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가시밭길을 미리 예감하게 만드는 사건이었고, 민주주의의 기본을 이루는 법치주의가 땅에 떨어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사형 집행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도 태연하게 “이 박사(이승만 대통령)는 소수가 잘살기 위한 정치를 했고, 나와 나의 동지들은 국민 대다수를 고루 잘 살게 하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을 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밖에 없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그 희생자는 내가 마지막이길 바랄 뿐이오”라고 했습니다. 죽산은 자신의 삶을 희생시켜 이 땅에 평화통일의 씨앗을 뿌렸고, 죽산이 뿌린 씨앗은 이 나라 시민들의 가슴속에 뿌리내려 이후 50여 년의 심한 격랑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았습니다.

 

지난 2011년 1월 20일 오후 2시. 북한의 간첩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산 조봉암이 쓰러진 지 어느덧 52년여 성상(星霜)이 흐른 시점에서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합의로 죽산에게 들씌웠던 모든 누명에 대해 무죄를 선언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죽산 조봉암의 동상을 건립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 지역의 정치인 한 분을 복권하고, 기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이 오랜 세월 이념으로 갈렸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 인천이 살고, 우리나라가 살고, 우리 민족이 사는 길로 나아가기 위함이며 평화통일의 정신을 가슴에 새기는 시민정신운동으로 승화시켜 나가기 위함입니다. 이 운동엔 성별이 없고, 출신 고향이 없으며, 신분고하가 없고, 여야가 없으며,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습니다. 이야말로 바다가 물을 가리지 않는 정신, 海不讓水의 도시 인천의 정신이며 우리가 세상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평화와 발전의 정신, 모두가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면서 자유롭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염원했던 죽산 조봉암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죽산의 정신을 새얼로 기리는 시민운동에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죽산 조봉암 선생 동상 건립 기금 계좌
은행명 : 우리은행
계좌번호 : 1005-501-128320
예금주 : 새얼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