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부처님 오신 날을 되새기며(인천일보 2004-5-24)

  • 날짜
    2005-05-10 16:27:00
  • 조회수
    1411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오늘의 뜻으로 해석해 봅니다.

첫째, 그분은 평화를 존중했습니다.
세존은 생명을 위해서 전쟁 대신에 평화를, 상쟁 대신에 화융을 주장했고 이 모든 것을 역지사지, 다시 말해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시었습니다. 이러한 정신과 태도라면 오늘날 기독교와 이슬람, 유태인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미국과 이라크 사이의 전쟁은 없었을 겁니다. 또한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50여년의 남북분단도 있을 리 없습니다. 게다가 삼만 여명의 미군이 내 나라, 내 영토에 평화라는 이름으로 한정없이 주둔하는 것도 불행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침략전쟁이란 것을 삼척동자도 아는 이라크전에 파병을 해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한마디로 거절하지 못하는 절박한 아픔을 부처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해답을 달라고 매달리고 싶습니다.

둘째, 자연에서 생명을 생각했습니다.
세존께서는 일찍이 사람과 동물 같은 생물은 물론 산과 바다, 나무와 돌 등 세상 모든 존재들에게 생명이 있고, 의미가 있다고 설파하셨습니다. 삼라만상이 모두 이토록 귀한 생명이며 각기 존재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겸손한 태도가 아니라면 생명운동을 토대로 한 환경운동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요! 서양은 애초부터 자연을 인간이 개척할 대상으로만 생각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서양의 개척이란 결국 자연을 파괴하여 자신들의 이해에 맞게 개조할 목적이지 공존(共存), 즉 천일합일(天人合一)의 뿌리가 원초적으로 없었던 것입니다. 이 근래에서야 자신들이 저질러 온 과거와 현실에서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환경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셋째, 그분은 민중 속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세존은 왕관을 버리고, 스스로 분소의(糞掃衣)를 입으시고, 어렵고 힘든 그리고 그늘에 사는 사람 밑으로 찾아가 뜻과 희망을 주셨습니다. 21세기는 국가와 정부를 넘어 시민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 불교가 그리고, 스님이 대중 속으로 깊이 뛰어 들어갈 때 부처님의 힘이 불자들을 통해서 더욱 크게 솟아날 것입니다.
부처는 자각(自覺)으로 오셨기 때문에 모든 것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따라서 네 탓이 아니라 내게서 비롯되었다는 여유롭고 절실한 정신이 바로 차별과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사회를 만듭니다.

부처님은 분명 극락세계에서 참선만 하고 계시지는 않을 겁니다. 미륵보살도 도솔천의 용화수(龍華樹) 그늘에 편안히 계신 것이 아니라 오늘날 공사판이나 시장 바닥에서, 사백이십만 명이 넘는 신용불량자의 사회적 낙오와 가정파탄으로 길거리에 나서는 그 많은 사람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들으시고 땀 흘려 해결하고 계십니다.

과연 위기와 고난 속에서 21세기에 필요한 종교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 종교를 불교라 말합니다.
이것은 동양 사람보다 서양 사람들이 더 많이 주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불교와 함께 스님과 불자들이 조화 있는 지도력을 발휘하여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현실에 밝은 등불이 되어 세존의 참 모습이 밝혀지길 서원합니다.

-2004년 5월 26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