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잊혀지지 않는 일들

  • 날짜
    2005-05-10 16: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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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시장과 정무부시장, 건교부장관, 해수부장관, 여야국회의원, 경제자유지역청장, 부청장 그리고 범대위 대표들이 앉아 제2연육교의 주경간 교각 폭을 800m 이상으로 결정하던 날 밤(12월 12일, 파라다이스 호텔), 나는 법정 최후 진술을 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의견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다리가 준공되어 인천항을 왕래하는 선박(5만 톤 선박과 컨테이너 4,500여개를 적재한 배)이 불편 없이 교행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해수부가 제시한 최소한의 기준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범대위 사람들이 공연히 지나친 염려를 해서 공기를 8개월이나 지연시키는 과오를 범했다고 비판받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약 4년 후 범대위 사람들이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소리가 인천항 너머 외국의 물류관계분야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는 일이 생긴다면 이것은 인천의 불행이자, 한국의 손해요, 개성이 열리는 한반도의 중심도시로서의 역할에 발목을 잡히는 일이 됩니다.”

교각폭을 800m 이상으로 할 것을 정하는 자리에 임했던 범대위 간부들의 심정은 이처럼 비통함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범대위 활동을 통해 자위할만한 것도 있었다. 지역 현안을 놓고 벌이는 시민운동이라 하면 으레 핏발선 얼굴로 피켓을 앞세운 데모와 삿대질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우리 범대위는 단 한 번의 고성(高聲)도 없이 오직 이론과 설득 그리고 성숙한 모습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시민의 성금을 모아 8,000만원이란 거금을 들여 중립적인 전문기관에 독자적으로 용역을 의뢰해 제2연육교 주경간 폭의 안전성을 추구했다. 대안 없는 시민운동이란 비판은 최소한 범대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이런 범대위의 활동은 중앙정부의 권위 의식, 탁상행정, 현실을 모르는 이론으로 현장을 압도하려는 횡포를 어느 정도 저지할 수 있었다.

시민의 안전과 남북한 교역 증대를 통해 통일 한국을 예비하는 제2연육교 안전대책운동은 정치적인 여야가 없었으며, 진보와 보수, 청년과 노년, 그리고 종교를 구분하지 않는 시민운동, 인천의 거의 모든 시민사회단체들이 총망라되어 참여했다는데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이는 10년 전 굴업도 핵폐기장반대운동에 이어 우리 시민운동사에 커다란 의의를 가지고 기록될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범대위 활동 중에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일들도 있었다. JMS의 용역결과 제2연육교의 안전한 주경간 폭은 800m이상으로 보고되어, 범대위에서는 좀더 노력한다면 800+a 이상의 성과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던 무렵인 12월 6일 밤 10시 45분, 범대위 사람들도 모두 퇴근한 시각 인천시로부터 한 장의 공문이 팩스로 들어와 있었다.
내용인즉, 다음날 아침인 12월 7일 일본 도쿄에서 용역 결과를 재실험하니 도쿄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6일 밤 회의를 마치고 모두 귀가해 있을 시간에 한 장의 팩스로 날아든 청천벽력 같은 공문을 본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모두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재주로 당일 일본행 비행기표와 비자를 얻어낸단 말인가! 재경부, 건교부, 해수부 등 중앙부처는 물론 인천시 그리고 심지어는 다리를 건설하는 아멕조차도 갔는데, 범대위만 고의로 누락시켜 재실험 참관에서 빼놓은 것이다. 나는 이런 사실을 두 분의 장관과 시장 앞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남대문 시장에서 불량배가 손님의 물건을 날치기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중앙정부가 인천시를 끌고 다시 동경으로 날아간 것은 800m에서 700m로 되돌리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멋으로 도쿄 유람을 위해 그 먼 길을 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좋다. 하지만 더 참혹한 일도 있었다. 앞에서 말한 12월 12일 저녁 5시부터 장시간에 걸쳐 진행된 긴장된 회의 분위기 속에 국무총리 산하기관인 KMI의 용역 결과가 문제가 되었다.
KMI(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서는 인천항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주경간 폭이 850m는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인천의 고위공무원이란 사람이 KMI의 주장을 자료가 부족하고, 논거가 빈약해서 취급할 가치가 없다는 뜻을 당당히 밝히고 나서는 게 아닌가. 나는 이 사람의 태도와 말을 듣고 “기가 막히다”는 말을 난생 처음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백번 양보해 설령 KMI의 논리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인천을 대표한다는 공무원 중 한 사람이 인천항의 안전과 미래를 외면하고, 중앙정부의 입장만을 대변하다니. 이런 사람들을 지역 규모가 아니라 국가 규모로 확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 좀더 힘 있는 세력에 붙는다는 의미로 보자면 역적이 아닐까!

인천광역시 시장은 이 말을 듣고 도대체 어떤 심정이었을지 궁금해진다. 나는 지금도 제2연육교와 이 문제를 다루던 공무원들을 생각하면 불안해진다. 국장시절엔 힘주어 1,000m를 주장하던 사람이 현재는 항만의 관할부서인 해양수산부 차관으로 영전하였다. 최소한 내가 만났던 그 분은 인격과 학식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불안해진다.
사람들은 내년이면 광복 60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광복 60년 이전에 나라를 잃은 망국의 치욕인 을사조약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정의는 기억을 바탕으로 쓰인다는 오랜 경구를 가슴에 새기며 개성공단 시대를 열어젖힌 황해가 떠오르는 을유년 새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