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윤여정과 봉준호

  • 날짜
    2021-06-30 15: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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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광복 이후 미군정시기부터 영어를 안다는 것은 출세의 사다리요, 새로운 특권이었다. 수년 전 강남 어딘가에 영어로만 주문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그런가하면 최근엔 태어난 지 4개월밖에 안된 영유아를 대상으로 영어를 들려주는 학원이 성행한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영어를 듣고 커야 자라서도 영어에 친숙해지기 때문이란다. 영어가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소외감을 느낄 일이고, 영어에 능통한 것을 자신의 자존감을 과시하며 사회적으로 우월한 사람으로 자부하는 신분의 상징이라고 여기는 탓이다. 이런 것에서 오는 정신적_사회적 빈부격차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째서 우리는 윤여정 씨에게 열광하며 환호를 보냈을까? 단지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여우조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온 국민이 그토록 환호와 탄성을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윤여정은 수상소감에서 영화 <미나리>의 제작자이자 여우조연상 시상자였던 '브래드 피트'를 향해 “(보고 싶었는데)영화 제작하는 동안 당신을 한 번도 본적이 없어 아쉬웠다. 여기서 만나게 돼서 기쁘다”라고 말해서 청중들의 웃음을 유발했다.

시상식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미국 기자가 “시상자와 수상자로 브래드 피트를 만나고 함께 이동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눴고, 그에게서 어떤 향기가 나던가요?”라며 장난스럽지만 경박한 질문을 던졌다. 미국 기자가 'smell'이란 단어를 사용한 까닭은 그가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배우인 동시에 한때 '샤넬 No5' 향수의 모델이었기 때문이라고 선의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 보고 싶었다고 하더니, 만나보니 좋던가요?'라는 의미의 자칫 무례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윤여정은 “나는 그의 향기를 맡지 않았어요. 저는 개가 아니거든요(I did not smell him. I'm not a dog)”이라며 제작자 브래드 피트에 대해선 존경을 표시했지만, 본인 역시 자신의 삶에 깃든 긍지와 배우로서의 자존심을 담담하지만 품위 있게 표현했다.

비록 윤여정의 수상 소식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돋보이진 않았지만, 영화 <기생충>으로 전년도 감독상을 수상했던 봉준호 감독 역시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이란 걸 잘 보여주었다. 감독상 부문 시상자로 미국 현지에서 시상식에 참석한 것이 아니라 서울에서 녹화한 영상을 통해 시상을 대신했다. 그는 영어에도 꽤나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시상식 내내 한국어로 이야기했다. 그는 감독상 후보들과 대화를 나눌 때 모두 한국어를 먼저 사용했고, '기생충 통역사'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샤론 최 씨가 영어로 통역하는 과정을 밟았다. 봉 감독은 자신의 영어 실력을 과시하기보다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먼저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의 어느 거리를 지나다보면 이곳이 외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줄지어 서 있는 상점,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摩天樓), 번듯한 아파트, 국산차,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 이름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외래어로 되어 있다. 지금도 우리 이름이 한자로 되어있긴 하지만, 젊은 부부들 가운데는 한글로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 모습도 가끔 보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한때 중국 대륙을 평정한 이민족들이 있었다. 요, 금, 신장, 몽고, 청 등은 결국 한문(漢文)을 비롯한 중화문화에 흡수되어 사라졌지만, 우리는 삼국시대,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도 동북아에서 유일하게 중국화되지 않고 버틴 민족이다. 외래문화, 외래어를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시작과 근본이 어디에서 출발했건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무역을 해서 경제를 유지하는 나라라면 외래문물 및 외래어에 개방적일 수밖에 없다. 외래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장려할 일이지만 그 속에 매몰되어 '나(自我)'를 상실하는 비극을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시인(詩人)들이 잃어버린 산하(山河)라고 표현하는 일제강점기, 어둡고 치욕적인 생활이 일상일 때 일본어가 국어(國語)가 되어 조선인이면서도 학교 교문에 들어서면 조선말을 사용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 200여년 전만해도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왜? 말은 생활이라 지킬 수 있지만, 나라를 잃어 문자도 문화도 쇠퇴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말은 있어도 글자가 없는 나라, 말과 글을 모두 잃은 민족이 역사적으로 많이 있다. 우리말에 한자가 70% 가량 된다고 하지만, 영어 역시 라틴어에서 기원하는 단어가 대략 65% 가량 된다고 한다. 그러나 영어권 국가들이 영어를 자기나라 생활, 문화, 풍속, 제도에 맞추어 라틴어보다 얼마나 다양한 어휘로 발전시키고 있는가를 우리는 체험으로 잘 알고 있다. 말과 글은 쉬지 않고 갈고 닦고 새롭게 그리고 마음과 정서로 전하지 않으면 시들고 생명력이 사라진다. 일본이 조선말과 한글을 없애기 위해 저지른 포악한 정책에 맞서 얼마나 많은 지도자와 한글학자가 옥고를 치르고 죽음에 이르렀는지 뜨거운 마음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려움과 치욕을 겪어야 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길목에 서 있는 우리는 미래를 향해 어떤 설계를 가지고 있는지 지도자들에게 묻는다. 이 근래 우리는 주변의 강대국과 북한으로부터 모욕적인 발언과 행동을 자주 목격하고 있지만, 우리 국회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중국에서 맥없이 철수하게 될 때도, 우리나라 국회를 통과한 법에 대해 미국 하원에서 청문회를 진행하는 데도, 북한의 비상식적 비방에도 침묵만 지키고 있다. 임시방편과 임기응변으로 여야가 대응해서는 안된다.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뜻을 전하는 것이다.

침묵이 금이어서 고즈넉한 산사(山寺)의 선방에 들어간 이들처럼 조용히 있는지 모르겠지만, 300명의 국회의원 중에 다선의원들은 그렇다쳐도 초_재선 의원들은 무엇 때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들에게는 설익은 용기조차 없단 말인가. 윤여정의 위트, 봉준호의 뚝심에 국민들이 환호와 탄성을 마다하지 않는 까닭은 국회에서 볼 수 없는 빛나는 순간이었고, 시민의 답답한 마음을, 그리고 국민의 자존심을 그들이 대신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