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역사교과서에 없는 사과는 진실이 아니다

  • 날짜
    2020-03-16 10: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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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에 없는 사과는 진실이 아니다

 

지용택(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세계 전쟁사에서 숙적(宿敵)하면 프랑스와 독일과의 관계에 비교될만한 나라는 드물다. 나폴레옹의 독일 침략으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약 150년 동안 이 두 나라는 무려 네 차례의 전쟁을 치른 불구대천지수(不俱戴天之讎)라고 해야 적합한 표현이다. 이렇게 숙적관계가 심화되고 고착된 데에는 자민족 중심의 편향적인 역사관과 역사교육이 크게 작용했다. 두 나라의 양심적인 학자들과 교육 일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모여 70년에 걸쳐 공부하고 연구·비교하는 노력 끝에 2006년에 만들어낸 것이 독일프랑스공동역사교과서이다.

 

기존교과서들이 역사를 자국중심에서 바라보았다면 프·독 공동역사교과서는 세계 그리고 유럽이라는 보다 큰 틀에서 역사를 비교·연구하여 저술한 것이다. 교과서 내용 중에도 양국의 서술 차이도 눈에 띈다. 유대인 희생자와 집시 희생자에 대하여 프랑스판 교과서에는 각각 약 500만 명과 20만 명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반해 독일어판 교과서에는 약 600만 명과 50만 명으로 더 많은 수치가 기록되어 있다. 희생자 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는 것이지만, 독일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가해 규모를 축소하지 않고 도리어 늘려잡은 것이다. 이것이 사과하고 뉘우치는 자세가 아닌가!

 

참회하고 반성하는 독일

전후 미국은 모겐소 플랜(Morgenthau Plan)을 세워 패전국 독일에서 일체의 공업시설 설비를 불허하는 정책을 세웠으나 동구권과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서독의 재건에 박차를 가했다. 따라서 19483월 탈나치화 정책을 종결지었다. 나치와 관련해 형을 언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1950년대가 채 지나기 전에 석방되었다. 이 시절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전쟁의 희생자라 여기며 나치 정권에 참여한 범죄를 히틀러와 나치당에 전가하는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죄의식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동독은 독일 파시즘을 딛고 일어난 승자임을 자처하며 나치의 모든 부정적 유산을 서독에 떠 넘겼다. 동독의 공산정권이 서독에 비해 동독의 탈나치화가 훨씬 더 근본적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하지만, 실제적인 과거사 극복작업과 관련해서는 통일 전까지는 서독에 비해 동독이 내세울 것이 없다. 그러나 1950년대 말부터 서독의 언론이나 국민의 여론이 나치 범죄에 대한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서독 정부는 이에 호응하여 전() 나치책임자들에 대한 형사소추와 재판이 가능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게다가 서독 정부는 화해정책(신동방정책)을 통해 동구권과 새로운 관계 개선을 도모하면서 1970년에는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사민당)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게토에서 일어난 저항을 기념하는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을 보고 유럽 여러 나라가 서독의 과거사 반성에 대해 신뢰를 보내기 시작했고, 독일의 침략을 끝까지 용서할 수 없다고 고집했던 폴란드 국민의 마음도 돌아서게 되었다. 1979년 독일의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홀로코스트> 시리즈가 방영되어 독일의 참된 참회를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미래 세대에게 가르치지 않는 일본

그러나 일본은 어떤가?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고대로부터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 지배했다는 역사적으로 근거가 없는 내용을 수록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한국, 중국, 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침략전쟁과 범죄에 대한 사과는커녕 한 마디 사실도, 진실도 보이지 않는다. UN상임이사국이 되어 정치대국으로 웅비하고 싶은 욕망은 무산되었으나 헌법을 개정하여 자위대일본군이 되어 외국으로 출병할 수 있는 길을 열겠다고 하는 헌법개정행위가 과연 평화(平和)를 지향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패전을 종전이라고 국민을 기만하는 교과서가 있는 한, 한국, 중국, 미국, 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여 엄청난 살상과 파괴 행위를 자행했다는 사실을 교과서에 올려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한 아베 정부가 말로만 골백번 사과를 한다고 한들 이것을 진심이라고 믿고 진실하게 받아들일 피해자들은 없을 것이다. 전쟁과 침략의 가해 주범들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 참배하면서 우리나라와 경제전쟁을 선포하는 행위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일본인 학자인 도리우미 유타카(鳥海豊) 박사가 저술한 일본 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몇 마디 인용하고 싶은 글이 있다. “일제 때 한국에 온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거나 직업이 없는 실업자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 부자가 됐다. 조선인은 더 가난해졌는데 일본인은 거의 전원이 큰 부자가 됐다는 게 너무 부자연스럽고 이상하지 않나? 결국 수탈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맞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대한제국 때 만들어진 은행을 한일합방 뒤 일제가 완전히 장악했고 그때부터 일본인과 조선인을 차별했다. 즉 일본인에게는 저리로 대출을 적극적으로 해주었는데 조선인에게는 정반대였다. 따라서 조선인은 주변의 일본인에게 고리대금으로 사채를 빌려야 했다.”

 

일본의 식민지 정책은 일본 본토의 공장과 경쟁할 수 있다는 이유로 조선에서는 공업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일제는 의도적으로 식민지 조선을 쌀 모노걸쳐(단일작물) 경제로 만들었다는 사실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또 일본 사업주는 조선인들에게 임금지급도 당시 신고가격의 3분의 1 수준으로 후려쳤다. 총독부의 통계연보에는 조선인 노동자의 일당이 일본인 노동자의 절반인 1엔으로 적혀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30~40전 심지어는 20~30전만 지급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내용들을 읽고 쓰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한국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사과했다고 말한다. 마치 일본은 이미 진심어린 사과를 했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를 이루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이 일본에게 생떼라도 쓰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패전을 종전이라 말하고, 가해 사실을 교과서에 수록해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일본이 진심으로 사과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라가 어려울 때는 국민이 깨어있어야 험난한 시대와 외세의 격랑을 타고 넘을 수 있다. 우리 모두 이 긴 밤 속에서 함께 손을 잡고 깨어 있어야 앞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