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先行其言, 而後從之. - 『論語』 「爲政」편 13장

  • 날짜
    2018-03-15 09: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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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나라가 어지럽고 힘들 때일수록 법조인의 역할이 돋보입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변호사 출신으로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이 된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그는 미국의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해방선언을 통해 미국을 오늘날의 국가 형태로 만들어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의 위상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사회의 중심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활발하게 움직이는 법조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어려운 국가고시를 통과해서 법조인이 되었는데, 호구지책(糊口之策)에 급급해서 청운의 뜻을 잃은 모습을 보인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우리가 아픈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권위가 실추된 사회에서 생존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권위주의를 배격해야 하지만, 권위는 인정해야 합니다. 차등은 인정하지만, 차별을 거부해야 하듯 말입니다. 권위란 그 사회가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을 행동으로 책임지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권위란 일관성 있는 신뢰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몸소 책임지고 실천하는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돈이나 권력에 대해 권위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재벌이나 권력자에게 권위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옛 어른들은 왕조시대에조차 그런 이들에 대해 권세(權勢)를 부린다고 했지, 권위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권위는 오직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빛이며 힘입니다. 지식인들 가운데에도 눈치와 요령으로 항상 따스한 양지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항시 양심과 정의라는 명분을 내걸지만, 지조도 없고, 일관성도 없는 행위를 하는 위선자이기에 경계해야 합니다.

 

()나라 문제(文帝) 때 사람으로 범엽(范曄, 398~446)이 쓴 후한서(後漢書)』 「순리열전(循吏列傳)임연(任延?~67) 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광무제가 임연에게 무위 태수를 내리면서 상관을 잘 모셔서 명예를 잃지 않도록 하라(善事上官 無失名譽)”고 이르자 임연은 신이 듣기로 충신은 사사로움을 도모하지 않고, 사사로움을 도모하는 신하는 충성하지 않는다(忠臣不私, 私臣不忠)고 하였습니다. 바른 길만 밟고 공()을 받드는 것이 신하된 사람의 절도입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뇌동하게 되면 폐하께도 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윗사람을 잘 모시라는 폐하의 조칙을 받들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니 황제가 용상에서 내려와 손을 잡으며 감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은 목민심서(牧民心書)』 「봉공(奉公)편에서 윗사람에게 잘못을 하더라도 백성에게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면서 임연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중국의 성리학은 오직 황제에게 충성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지만, 퇴계(退溪), 율곡(栗谷) 같은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다산처럼 임금보다 백성을 더욱 무겁게 보았습니다. 이것이 중국과 조선 성리학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뜻이 있어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나부터 변화해야 합니다. 나는 항시 그대로인데 구조적으로 쇠사슬처럼 얽혀 있는 사회가 어떻게 쉽게 변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변하지 않아도 사회와 세계는 쉬지 않고 변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에 따라 함께 변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서 있는 사람들은 결국 퇴보하고 맙니다. 노장(老壯) 철학의 근본은 자연과 세상만물은 항시 변한다는 것입니다.

 

권력의 시선으로 보면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든 세상은 움직이지 않고 바위처럼 조용한 것 같지만, 역사는 동학농민의거, 31기미독립운동, 419학생의거, 518광주항쟁 그리고 최근의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바보처럼 보이던 시민들이 모여 여론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어 왔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과거 세계를 움직이던 지도자들은 세계질서와 평화를 강대국의 이해관계 보다 앞세워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중국의 시진핑은 자국의 이익만을 부끄럼 없이 앞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순간에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당황하고 길을 잃기 마련입니다.

 

조선왕조가 쓰러지고 논밭을 잃은 팔도강산의 사람들이 개항장의 일터를 찾아 건강하기만 하면 어쨌든 먹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인천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고향을 묻지 않았고 협력하여 오순도순 살았습니다. 자식을 키우고 교육시키고 인물을 배출했습니다.

 

, , 음악, 그림, 조각 등 각 분야에서 초석을 놓은 거인들의 이름을 이 자리에서 일일이 부르기는 어렵지만, 우선 해방 후 초대농림부 장관을 역임한 죽산 조봉암 선생이 계십니다. 조봉암 선생이 토지개혁의 기초를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덕분에 625동란 당시 농민은 자신의 농토를 수호하는 마음으로 공산주의 세력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유당 독재에 맞서 대통령 선거에 두 번 출마하였습니다.

 

419 학생의거 후 민주 정부의 내각수반이 된 장면 박사가 계시고, 학계에서는 고미술계의 태두 우현 고유섭 선생이 계십니다. 서울대학교 초대총장 신태환 선생, 이화여대 초대총장 김활란 박사 그리고 법조계에서 제3, 4대 연이어 대법원장을 지낸 조진만 선생이 계십니다. 한글로 판결문을 써야 일반 시민들도 법의 내용을 알게 된다고 주장하신 것은 한문체의 판결문을 탈피한 참신한 개혁이었습니다.

 

인천의 정체성은 해불양수(海不讓水)입니다. 경기의 임진강, 영남의 낙동강, 호남의 섬진강이 바다에 들어오면 황해(黃海)가 되고, 인천인(仁川人)이 됩니다. 그처럼 개방적인 인천이기에 영남 사람도, 호남 사람도, 기호 사람도 이곳에서 시장이 되고, 국회의원이 또 사회의 중진이 됩니다. 인천 사람들이란 이처럼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부산, 광주, 대구 등 한국의 어디에도 이렇게 폭 넓게 사람 중심으로 인재를 선정하는 곳은 인천밖에 없습니다.

 

법조인 여러분! 여러분은 젊고 또 젊습니다. 여러분은 평균적으로 백세 장수 시대를 살아갈 사람들입니다. 인천은 한반도의 중심에 있습니다. 인천에 사시면서 인천 사람들과 함께 큰 꿈을 가슴에 품고 몸소 책임지는 일꾼이 되어주십시오. 인천은 뜻을 품은, 용기 있는 젊은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